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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삶 마감한 ,,영화계의 거장,,,최은희~~!!

  • 박종순 기자 escape66@hanmail.net
  • 입력 2018.04.17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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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캡쳐
▲sns캡쳐

영화배우 최은희씨가 지난 16일 향년 92세로 별세 해 영화계의 큰 별이 떨어졌다.

전날 오후 병원에 신장투석을 받으러 갔다가 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은희는 한국 영화계의 거목이자, 삶 자체가 한 편의 영화였다는 점에서 영화팬들은 그야말로 슬픔에 빠졌다.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 납북과 탈출 그리고 수백 편에 이르는 영화 출연과 제작·연출까지. 고인의 인생은 드라마틱한 사건의 연속인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 애도의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질 전망이다.

지난 2006년 남편 신상옥 감독을 먼저 떠나보낸 뒤 허리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악화 됐고 별세하기 직전까지 서울 화곡동 자택과 병원을 오가며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투석을 받아왔다.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1926년) 최은희는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해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1950∼60년대 원조 트로이카로 떠올랐다.

1953년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신상옥 감독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최은희는 1954년 결혼 한 뒤 부부가 함께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최은희는 배우이자, 우리나라의 세 번째 여성 감독이기도 했다. `민며느리`(1965) `공주님의 짝사랑`(1967) `총각선생`(1972) 등을 연출했고, 1967년에는 안양영화예술학교의 교장을 맡아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는 등 최은희는 영화계의 거목으로 떠올랐다. 

신 감독과 이혼한 최은희는 1978년 1월 홀로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 납치되고 이후 신 감독도 그해 7월 납북돼 1983년 북한에서 재회한후 두 부부는 이후 북한에서 신필름 영화 촬영소 총장을 맡으며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년), `사랑 사랑 내 사랑`(1984년) 등 모두 17편의 영화를 찍었고 또 북한에서 만든 영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신 감독과 최은희는 김정일의 신뢰를 얻은 뒤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 방문 중에 미국 대사관에 진입해 망명에 성공한 후 10년 넘는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99년 영구 귀국했다.최은희는 자서전을 통해 "사람들은 내게 영화와 같은 삶을 산 여배우라고 말한다.

나는 평범한 여자에 불과한데 어쩌다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됐을까. … 나는 분단국의 여배우로서, 신 감독은 분단국의 영화감독으로서 조국의 비극에 희생양이 되는 경험을 했다.

그러나 배우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연기를 통해 타인의 삶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며 살면서 모든 이들의 인생이 참으로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을 배웠다."고 기술했다. 

고 최은희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9일 오전이며 장지는 경기도 안성 천주교공원묘지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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