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에 대한 잘못된 인식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잘못된 인식
  • 김덕현 스페셜 칼럼
  • 승인 2019.03.09 22:1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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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현 교수
김덕현 교수

[국민투데이 전문가 칼럼=세종사이버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4차 산업혁명(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이하, 4IR)이 국가 차원의 관심사가 된지 최소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것에 대한 공감이나 합의가 부족한데다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인식도 퍼져있는 상태이다. 굳이 4IR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 신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고 전통산업과 신산업 영역에서 해외 선도기업들의 시장지배력이 커져가고 있기에 5년 또는 10년 후 우리나라의 기술/산업 경쟁력이 지금 보다 나아질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더구나, 4IR은 기술에서 시작되어 산업경제를 넘어 사회 전반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면, 지금의 우리나라는 사회적 불안요인도 큰 상태라서 4IR 또는 다가올 대변혁을 바르게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준비하는 것은 국가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과업이다.

새로운 용어/개념을 만들거나 외부에서 가져다 쓸 때, 그 의미를 명확히 정의한 다음 그것을 이해관계자들이 공감하도록 하는 일은 사소한 일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미국이나 EU에서 발간되는 정책 문서나 표준 규격서, 기술보고서 등은 대부분 앞부분에 용어 정의가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국내/외 모든 법률에도 그와 같은 용어 정의가 반드시 포함된다. 특정 단어나 문장이 잘못 해석될 소지를 없애고, 잘못 의사소통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잘못된 이해는 잘못된 생각과 잘못된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 필자는 클라우스 슈밥이 제기한 ‘4차 산업혁명’이란 명칭 자체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이지만, 그가 제시한 대변혁의 성격이나 올바른 대응방안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는 입장이다. 세계경제포럼(WEF) 의장인 슈밥은 2016년 1월 다보스에서 개최된 연례 포럼의 기조연설을 통해 4IR을 ‘3차 산업혁명(즉, 디지털 혁명)의 기반 위에서 다양한 기술융합의 결과로 물질계, 가상계, 생명계 사이의 경계가 낮아지는 (인류) 사회 전반의 변혁’으로 규정한 바 있다.

이하에서 필자는 4IR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오류 가능성을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4IR은 디지털 혁명의 기반 위에서 산업경제 전반을 혁신하고 그것을 안착시킬 수 있는 사회체제를 혁신해야 하는 대변혁이지 디지털 혁명 그 자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1월, 4IR을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로 촉발되는 초연결 기반의 지능화 혁명- 산업뿐만 아니라 국가시스템, 사회, 삶 전반의 혁신적 변화’로 정의하였다. 이것은 박근혜 정부 때 4IR을 ‘초연결•초지능 사회’ 즉, 디지털 혁명의 연장으로 정의했던 것을 답습한 셈이다. 그 결과 (1) 산업경제나 사회혁신보다는 디지털 플랫폼 구축에 집중하는 식의 투자 배분이 이루어지고 있고 (2) 물질계 기술(예: 나노기술과 그 응용)과 생명계 기술(예: 바이오기술과 그 응용), 그리고 디지털 기술 간의 융합이 소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기존 산업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기술/공정 혁신과 신산업을 위해 확보해야 할 제품/서비스(예: 스마트 센서, 첨단 소재, 생산 장비, 창의적 비즈니스 모델), 그리고 국가/사회 차원에서 긴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예: 고령화, 환경, 재난)에 대한 솔루션 개발-상업화는 기업이 주도해서 단기적, 집중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고, 선도국가와 비교할 때 한참 뒤쳐져 있는 디지털 플랫폼(예: AI, 클라우드, 빅데이터)에 대해서는 정부가 주도해서 장기적 안목으로 기초/응용기술을 개발하면서 그것들이 낙후된 원인(예: SW와 서비스 가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둘째, 4IR은 변혁의 대상인 학문/지식, 기술, 산업 등은 경계를 낮추거나 진정한 의미에서 융합되고, 변혁의 주체인 정부, 기업, 학계/연구소 등은 개방-연결-협력이 확대되어야 할 텐데 우리는 여전히 혁신 대상은 따로따로 진화되고 있고, 혁신 주체들은 각자도생 식으로 약진하고 있다. 또한, 국가/사회 차원에서 갈등 조정 기능이 약화되다보니 슈밥이 제시한 4IR에 대한 협력적 거버넌스 구축은 요원한 과제가 되고 있다. 협력적 거버넌스란 특정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과거처럼 정부 주도 또는 시장 주도 식의 일방적 접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해법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조직구조, 제도, 리더십을 포함한다.

셋째, 최근 언론 자료나 사람들의 대화에서 4IR을 ‘4차 산업’ 심지어 ‘4차’로 줄여서 쓰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지양해야 할 일이다. 얼마 전 어느 분이 필자와 똑같은 우려를 담은 글을 신문에 기고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너무나 중요한 문제라 생각되어 다시 한 번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4차 산업’은 산업을 분류하는 용어이고, ‘4차 산업혁명’은 인류 문명 발전, 그 중에서도 특히 산업의 변혁 단계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영국 경제학자인 콜린 클라크는 1930년대에 산업을 1차(즉, 농/축산/임업), 2차(즉, 제조업과 광업), 3차(즉, 서비스업)으로 분류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서 3차 산업 중에서 정보기술, 미디어, 지식기반 서비스 등의 비중이 커지자 누군가가 이들을 따로 떼 내서 ‘4차 산업(Quarternary Sector)’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 후, 취미, 여가 관련 사업을 ‘5차 산업’으로, 최근에는 1차, 2차, 3차 산업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농업을 ‘6차 산업’으로 부르기도 한다. 즉, ‘4차 산업’은 3차 산업인 서비스업의 일부를 가리키는 용어이므로 전 산업을 타겟으로 하는 4IR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용어인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줄여서 쓰고자 한다면, 엉뚱한 용어를 쓸 게 아니라 4IR을 쓰면 된다. SNS(Social Network Service)라는 용어가 처음에는 낯설었을지 모르지만 이젠 대부분의 국민들이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을 가리키는 용어인 것을 알게 된 것처럼 말이다.

필자가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4IR 과목의 수강생이 작년에 800명 이상이었는데 금년에도 600명 이상인 것을 보면서 4IR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여전히 매우 크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와 같은 불안감을 불식시킬 수 있는 정책과 산학연관의 공감대와 협력, 그리고 실질적인 성과의 축적이 무척 아쉽다. 참고로 위에서 얘기한 ‘수강생’은 다양한 연령층, 전공/학과, 직업을 가진 사이버대 재학생이기에 전체 국민들의 표본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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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별 2019-03-15 02:07:02
잘 보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교수님

한정희 2019-03-11 09:14:55
교수님 칼럼 잘 보았습니다.
미래에 대한 시각을 넓힐수 있어 좋았구요, 좀더 나아가서는 우리 삶에 직접적이고도 실질적인 내용이라 관심이 매우 큽니다.
앞으로도 좋은 칼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