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몰락, 그 원인과 대처...'
'전문가의 몰락, 그 원인과 대처...'
  • 김덕현 스페셜 칼럼
  • 승인 2019.04.0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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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현 교수
          김덕현 이사장

[국민투데이 전문가 칼럼=혁신과융합협동조합 김덕현 이사장] 안보 전문가인 톰 니콜스 교수가 쓴 '전문지식의 죽음(The Death of Expertise)'이란 책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참조: 중앙일보, 2017. 5. 8.자). 인터넷 팽창과 민주주의 확산에 따라 누구나 쉽게 전문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일반인들은 더 이상 전문가를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2008년 맬컴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Outliers)'라는 책에서 최고의 전문가를 만드는 '1만 시간의 법칙(10,000-Hour Rule)'을 주장하였다. 전문가란 통상 ‘특정 학문/주제에 대해 상당한 시간과 비용, 노력을 투자해서 문제해결에 필요한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어떤 이유에서든 이제 그런 전문가들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어떤 전문가들을,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인가?

전문가의 위상이 실추되는 원인에는 니콜스 교수가 언급한 인터넷 보급과 민주주의 확산 같은 외부 요인 외에도 전문가 스스로 권위를 잃거나 역량에 한계를 느끼게 되는 것 같은 내부 요인도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에 따라 이젠 누구든지 맘만 먹으면 과거에 비해 적은 투자로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2018년 기준, 전 세계 인구의 절반 가까운 36억 명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고, 전 세계 인구의 40%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인 전 국민의 94%) 이상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그와 같은 인프라 위에서 매일 엄청난 양의 문서/이미지/동영상이 생산-유통-소비되고 있다.

2011년에 시작된 '무크‘(MOOC: Massive Open Online Course) 즉, 유대시티(Udacity), 코세라(Coursera), 에덱스(edX) 같은 웹 사이트는 전 세계 어디서나 유명 대학 교수/전문가 강의를 무료 또는 저비용으로 수강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민주주의와 평등주의 확산에 따라 오랜 동안 국가/사회를 지배해 왔던 권위주의가 혁파되어 이젠 누구나 대등한 존재로서 자신의 주장과 소견을 밝힐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전문가들이 가진 지식이 별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일반인들이 늘어났고, 실제로 일반인과 별 차이가 없는 지식/경험을 가진 자칭/타칭 ‘전문가’도 등장하게 되었다. 전문가 집단 내에서는 학문/지식의 깊이는 물론, 윤리 의식마저 부족한 ‘전문가’들이 표절이나 무단복제를 함으로써 스스로 권위를 떨어뜨리는 일이 생겼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새로운 연구 결과나 실제 사례를 쫓아가기 바쁘다보니 내가 직접 조사-분석한 1차 자료가 아니라 남이 만들어 놓은, 경우에 따라서는 잘못된, 2차 자료에 의존하는 일도 늘어났다. 나아가, 오늘날 국가/사회 차원에서 제기되는 문제(예: 미세먼지, 기상이변, 저출산-고령화, 남북관계, 경제발전) 해결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이 내 놓은 해결책이란 게 전문적이지 않거나 실효성이 없는 경우도 있다 보니 전문가의 권위는 더욱 더 실추되고 전문가 스스로도 자괴감을 느끼는 일도 생긴다. 대부분의 거대 사회문제들은 여러 가지 요인들이 서로 얽혀 있는 복잡한 문제라서 애시당초 특정 지식/학문 영역의 전문가들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사회에서 전문가는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일까? 누구나 다 전문가인 세상이 바람직한 것일까? 필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과학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의 존재는 여전히 필요하고 오히려 더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전문가는 지식/경험을 많이 가진 존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발전해 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고 난관에 봉착했을 때 그것을 앞장서서 해결해 주는 집단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전문가가 없거나 부족한 사회는 방향성을 놓치거나 난관을 만나면 쉽게 표류하거나 좌초할 수 있다. 권위주의는 혁파되어야 하지만, 사회 곳곳에서 있어야 할 권위는 존중되고 유지되어야 한다.

차제에 전문가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대처를 위해 다음 몇가지를 제안 하고자 한다. 첫째, 전문가 집단 내부에서는 독립적, 폐쇄적 연구와 토론을 지양하고 학제적이며 개방적 접근을 대폭 늘릴 것을 제안한다. 매일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새로운 지식을 예전처럼 혼자서 연구, 발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무모한 일이다. 수많은 학회나 학술단체들이 뿔뿔이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그 결과물을 제한된 연구자들끼리 공유할 것이 아니라 학제간/다학제 융합연구로 전환해서 보다 높은 수준에서 제반 지식/경험을 통합해야 한다.

특히, 국가/인류 차원의 사회문제 해결 과제에 대해서는 반드시 학문의 경계를 넘어선 초학제(Trans-disciplinary) 접근이 적용되어야 한다. 전문가 개인은 자신이 가진 지식에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다. 오늘날 내가 가진 지식의 대부분은 수없이 많은 선(先)지식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제공한 사회적 지식을 짜 맞춘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둘째, 사회 차원에서는 전문가의 의미와 역할을 새로이 정의하고 그러한 전문가들이 육성되어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굳이 4차 산업혁명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신기술 발전에 따라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에서 대변혁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시대에는 특정 지식/경험에 국한된 전문가보다는 여러 구성요소 간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전체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전문가가 더 많이 필요하다. 클라우스 슈밥(2018)은 줌인(zoom-in)보다 줌아웃(zoom-out) 즉, 보다 고수준에서 문제점과 해결책을 조망할 수 있는 통찰(insight)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사회가 얄팍한 지식/경험을 가진 이들을 전문가로 인정하고 활용하기 시작하면, 진정한 의미의 전문가들은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셋째, 범 부처 내지 국가 차원에서 전문가의 등록, 관리, 활용 체제를 체계적으로 통합할 것을 제안한다. 과학기술자 DB, 국가 인재 DB 등이 구축되어 있지만, 실제 정책 수립, 실행, 평가 단계에서는 부처/기관/부서별, 심지어 담당자별로 만들어 진 전문가 풀(pool)에 있는 전문가들만 참여하는 식이 되다보니 합리적, 객관적 판단이 결여될 소지가 있다.

특히, 국가/사회 차원의 거대 문제에 대해 소수의 전문가가 성급하게 결론을 만들어 놓고 전면 실행에 들어가는 식이 되다보면 자원 낭비와 시행착오를 피하기 어렵다. 미국, EU 등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부족한 인적 자원을 가진 우리나라는 국가 차원에서 통합된 전문가 풀을 구축하고 이들이 장기적, 지속적 씽크 탱크로 자리매김 될 수 있도록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문가가 전문지식만으로 존경받는 시대는 끝났다. 그러나 존경할 만한 전문가가 없는 사회는 불행하다. 누구나 의사, 교수가 되고 아무나 배우도 국회의원도 될 수 있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지나친 권위 즉, 권위주의는 타파되어야 할 대상이지만, 국가, 사회, 종교의 지도자가 필요한 것처럼 학문/지식의 전문가는 존중되고 육성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전문가는 전문가다워야 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전문가로 전환되어야 한다. 또한, 사회와 정부는 그런 전문가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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