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배와 수작부리기
건배와 수작부리기
  • 최태호 스페셜 칼럼
  • 승인 2019.09.06 14:2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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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br>최태호 교수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최태호 교수

[국민투데이 전문가 칼럼=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우리 민족은 술을 참 좋아한다. 러시아 사람들은 추워서 마시지만 한국인들은 즐기려고 마신다. 그래서 조지훈은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정을 마시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주도를 펼치기도 하였다. 예로부터 국중대회(國中大會)면 항상 ‘음주가무 주야무휴(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며 밤낮으로 쉬지 않았다)’라는 단어가 늘 따라다녔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필자도 술자리는 즐기는 편이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도 친구들이 모두 술에 취하면 하나 씩 차에 태워 보내고, 마지막으로 인사불성 된 친구 집에 바래다주고 집에 가는 것이 취미(?)생활이었다.

술을 마시면 언제부터인지 재미있는 건배사로 좌중을 즐겁게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형성되었다. 흔히 말하는 “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개나발!”을 외치고, 외국어를 사용한답시고 “드숑!, 마셩!”으로 흥을 돋우기도 한다. 이것도 이미 구세대의 유물이 되었고, 요즘은 “백두산(백 세까지 두 발로 산 타자), 마돈나(마시고, 돈 내고 나가자)” 등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렇게 건배사를 많이 하다 보면 하염없이 마시게 된다. 왜냐하면 건배(乾杯)는 ‘술잔의 술을 다 마셔서 말리다(비우다)’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술좌석에서 서로 잔을 들어 축하하거나 건강 또는 행운을 비는 일’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술을 마시면서 건강을 비는 것도 조금 이상하기도 하다. 중국사람과 술을 마시면 “건배!” 하고 나면 자신의 빈 잔을 보여준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머리에 잔을 거꾸로 들고 확인하는 순서도 있기는 하지만 중국처럼 반드시 잔을 비워야 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의미를 정확하게 따진다면 “건배!”하고 나면 잔을 비워야 하는 것이 맞다. 한자의 뜻이 그렇다는 말이다. 대학에 근무하던 초창기에는 MT만 가면 아이들의 성화에 몇 잔 마시고 항상 시체놀이(?)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아이들도 착해졌는지 술도 그리 많이 마시지 않고, 심하게 권하지도 않는다.

한국의 주도(酒道) 중에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술을 마실 때 석 잔을 원칙으로 하되, 다섯 잔은 허용되며, 일곱 잔은 넘을 수 없다.”는 규칙이다. 즉 술은 석 잔만 마시는 것이 가장 좋다는 말이다. 그래서 석 잔을 ‘품배(品杯)’라고 한다. 가장 품위 있는 술이라고나 할까? 넉 잔을 마시면 말이 많아진다. 그래서 ‘효배(囂杯, 왁자할 효)’라고 한다. 그러니 또 한 잔을 마셔서 다섯 잔을 채워야 한다. 눈치가 빠른 독자는 벌써 웃고 있을 것이다. 이 법칙에는 잔의 크기가 없다. 즉 많이 마시는 사람은 대포(大匏 - 큰 바가지)로 석 잔을 마시면 된다. (예전에 우리 어린 시절에는 대포집이 참 많았다. 필자는 집마다 발칸포가 하나 씩 있는 줄 알았다. 이제 보니 큰 바가지로 퍼준다는 뜻이었고, 더 큰 바가지로 떠 준다고 왕대포집이었던 것이다.) 참으로 융통성이 있는 법칙이다. 중요한 것은 홀수로 마셔야 한다는 것이니, 짝수는 음의 수이기 때문에 내장을 상하게 하고, 홀수는 양의 수이기 때문에 건강에 좋다. 그래서 홀수로 마시는 것이다.

다음으로 술을 마시면 수작부리는 사람이 많다. 맨 정신으로는 하지 못하던 것을 술기운을 빙자하여 작업(?)을 한다. 그것이 바로 ‘수작(酬酌)’이다. 수작은 “①술잔을 서로 주고받음, ②서로 말을 주고받음”이라고 사전에 나타나 있지만 원래는 ‘자기가 마시던 잔을 상대에게 주면서 술을 권하는 행위’를 말한다. 즉 대 놓고 뽀뽀할 수는 없으니 술잔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라도 뽀뽀해 보자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수작이라는 행위의 역사가 꽤 오래 된 것 같기도 하다.

술기운에 수작부리지 말고 백만 송이 장미를 들고 가서 구혼하는 것이 더 멋있지 않을까? 중요한 것을 술을 즐겨야지 술의 노예가 되면 안 된다. 흔히 ‘취(醉)했다’라는 표현을 하는데, ‘유(酉=술의 의미) + 졸(卒= 죽다, 졸하다) =취(醉)’라는 글자이므로 ‘취하다 = 술 마시고 죽을 가능성이 있다’로 해석할 수 있다. 취하도록 마시면 가족이 슬퍼하는 일이 생긴다. 애주가는 술을 즐기지 취하도록 마시지는 않는다.

 오늘의 주제! 술을 오래 즐기려면 폭주하지 말고 석 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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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애 2019-09-07 12:26:43
그러고 보니 요즘은 술문화가 많이 발전되었네요~~^^

유혜리 2019-09-07 12:21:59
오늘도 유익하고 재미난 이야기 감사합니다. 술은 적당히! 즐기면서 !마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