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가와 정치인
연극가와 정치인
  • 최태호 스페셜 칼럼
  • 승인 2019.10.05 12: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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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br>최태호 교수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최태호 교수

[국민투데이 전문가 칼럼=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필자의 지인 중에는 연극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아마도 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이리라. 학부에서 한문교육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니 참으로 쉽게 연구할 수 있었다. 동료들은 한자의 어려움에 힘들어 하고 있었지만 필자는 거의 문리가 터 있는 상태라 그리 어려움이 없이 교수들을 대신하여 강독한 적도 많다. 얼마 전에 연극 포스터를 찍던 사진작가를 만났는데, 그 지인 중에 ‘연극가’라고 찍은 명함을 들고 다닌다고 하며 웃었다. 필자는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연극인 중에서 ‘연극가’라고 표현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자신은 프랑스에서 제대로 연극을 배웠고, 대한민국에서 연극 연출에는 제일인자라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연극가’라고 명함을 찍고 다닌다는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 뉴욕이나 모스크바에서 연극을 전공한 친구나 후배들도 이런 표현을 쓰지는 않았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정치가라고 하면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사실상 ‘가(家)’라고 하면 ‘일가식견(一家識見 - 이를 줄여서 ‘일가견’이라고 한다)’을 가진 전문가를 말한다. 그래서 ‘화가’, ‘문학가’, ‘예술가’와 같이 전문가에게 ‘가(家)’ 자를 붙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연극인이 자신을 연극가라고 칭한 것은 대한민국에 하나뿐인 연극전문가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다른 이들은 스스로 연극인이라고 하니 말이다. 정치인들이 스스로를 정치가라고 한다면 정치에 뭔가 일가견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스스로를 정치가라고 하지만 사실은 정치인이 더 많다.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정(政)은 정야(正也)”이라고 공자가 말했기 때문이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경제인 중에는 경제가라고 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전문가로 말하자면 각 그룹의 회장만큼 경제전문가가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경제인연합회’라고 하지 ‘경제가연합회’라고 하지 않는다. 아직도 사농공상의 계급(?)이 존재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들도 전문가 그룹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코미디언도 희극인이라고 하지만 사실 사람을 웃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것인가? 그런데 그들을 ‘희극가’라고 하면 뭔가 이상한 것을 느낀다. 이미 오래 전부터 희극인이라고 불러서 그것이 뇌리에 각인됐기 때문이다. 언어(어휘)를 만드는 사람들이 대부분 식자층임을 감안한다면 그 단어를 만들 때 이미 무의식적으로 계급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상공인이 문학인보다 훨씬(?) 사회적 위상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금권이 권력(위상)이 되는 것이니 말이다.

한자 공부하는 김에 우리가 흔히 의식하지 않고 써 왔던 견문(見聞)과 시청(視聽)을 알아보자. 일반적으로 볼 때 ‘볼 견(見)’이나 ‘볼 시(視)’ 자(字)는 같은 의미인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마찬가지로 ‘들을 문(聞)’과 ‘들을 청(聽)’ 자(字)도 같은 의미로 알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같지만 속뜻을 보면 크게 차이가 난다. 예를 들면 TV를 ‘시청한다’고 하지 ‘견문한다’고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답은 간단하다. “견(見)은 그냥 눈에 보이니까 보는 것”이고 “시(視)는 눈에 힘을 주고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문(聞)도 그냥 들리는 소리를 듣는 것”을 말하고 “청(聽)은 귀 기울이고 듣는 것”을 말한다. 사실 이것은 영어로 강의하면 훨씬 편하다. “견(見) = see”, “시(視) = watch”와 같고 “문(聞) = hear”, “청(聽) = listen”과 같다. 물소리 바람소리는 그냥 들리니까 듣는 것(hear)이고, 라디오나 TV는 눈과 귀에 힘(?)을 주고 주의해서 듣고(listen) 보는(watch) 것이다. 그러므로 라디오는 청취자가 되고, TV는 시청자가 된다. “전국에 계신 TV 견문자 여러분!”하는 것보다 “전국에 계신 TV 시청자 여러분! 하는 것이 귀에 훨씬 와 닿는 이유다.

단어를 만들 때는 그 쓰임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야 한다. 말은 자신을 중심으로 하기에 자기중심적이 될 수밖에 없으나 우리말은 상대방을 존중하는데 큰 의미가 있다. 어휘 하나로 상대방의 가슴을 후벼 팔 수가 있으니 항상 타인을 배려하는 입장에서 단어를 선택했으면 좋겠다.

 제발 사회에 정치인보다는 정치가가 많았으면 좋겠다. 연극인도 연극가라고 부를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참 이상하다. 그림 그리는 사람은 ‘화가(畵家)’라고 하는데 왜 시를 쓰는 사람은 ‘시인(詩人)’이라고 할까? 문학가가 따로 있어서 그런가? 참으로 어렵도다!

 가을인가 보다. 견문을 넓히러 여행이나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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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ny 2019-10-06 08:23:54
한국어를 하는 우리는
언어학자,언어 교육전문가 라고
쓸수 있겠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