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지처참(陵遲處斬)과 오형(五刑)
능지처참(陵遲處斬)과 오형(五刑)
  • 최태호 스페셜 칼럼
  • 승인 2019.10.28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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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br>최태호 교수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최태호 교수

[국민투데이 전문가 칼럼=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필자는 잘난 척 하느라 사극을 잘 보지 않는다. 그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리얼리티(당대의 현실성)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주몽과 소서노와의 관계를 봐도 그렇다. 그들이 가약을 맺을 때 주몽은 18세였고, 소서노는 32세의 과부(아들이 둘이나 있는)였다. 주몽은 장인(연타발)의 경제력과 사회적 배경(군사력)이 필요했고, 소서노는 주몽의 능력이 필요했다. 즉 정략적으로 둘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결혼했다. 그러나 극중에서는 주몽이 훨씬 나이 들어 보였다. 우리나라의 역사상 나라를 둘이나 건국한 여성이 바로 소서노임을 생각한다면 그녀는 야심가였음을 금방 알 수 있다. 두 아들이 있었지만 주몽의 적자(유리왕)가 나타나니까 고구려를 포기하고 내려와 친자로 하여금 백제를 건국한 여인이다. 참으로 대담하고 결단력 있는 여인이다.

 이런 사극은 ‘역사적 사실’보다는 ‘흥미’ 위주로 전개하는 것이 많다. <선덕여왕>이라는 사극도 그렇다. 미실에 관한 이야기는 <화랑세기> 속에서 두 줄도 채 안 되는 글이다. 그것을 장황하게 늘이다 보니 각종 설화를 접목하여 시청자의 입맛에 맞추어 재미있게 만들었다. 다른 사극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사극을 보다 보면 자주 보는 광경이 있는데, “저 죄인을 당장 ‘능지처참’하여라.”라는 대사가 그것이다. 그러면 극 중에서는 바로 죄인의 목을 자른다.

‘능지처참(陵遲處斬)’은 능지처사(陵遲處死)라고도 한다. 즉 바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고통을 최대한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고 한 달(?) 쯤 지나 숨이 넘어갈 때 목을 베는 아주 잔인한 형벌이다. ‘능지처참’을 사전적으로 보면 “예전에, 대역죄를 지은 죄인을 머리, 몸뚱이, 팔, 다리를 토막 쳐서 죽이는 극형을 이르던 말”, 혹은 “죽여서 사지를 절단하여 곳곳에 뿌리는 형벌”이라고 나타나 있다. 그러나 '능지처참'의 본래의 뜻은 '陵遲處死(능지처사 : 천천히 죽음에 이르게 한다)'라고 한다. 반역죄, 패륜죄, 흉악범죄 등 중죄인에게 되도록 오래 고통을 주어 사형시키는 방법으로, 살아있는 상태에서 살을 저며내고 사지를 자르는 방식으로 집행한다. 중국에서부터 전해진 형벌이며, 이에 관한 우리나라의 기록은 고려 공민왕 때부터이다. 그 뒤 조선 초기에도 시행되었으며, 특히 연산군 때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는 1894년(고종 31) 완전히 폐지되었고, 중국에서는 1905년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인터넷에서 재인용함) 즉 죄인을

살아있는 상태에서 칼질을 5~6천 번 해서 고통을 최대한 많이 주는 것이다. 죄인의 입장에서는 가장 잔혹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국어사전>에 나온 것보다 훨씬 잔혹한 형벌임이 확실하다. 능지처참하라고 해서 바로 형장에서 목을 자르면 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행복할 것이다. 쉽게 죽이지도 않고 서서히 죽어가도록 고통을 주니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심정이야 오죽하겠는가?

흔히 중국에서는 오형(五刑)이라고 하였다. 오형은 『서경』「순전(舜典」의 유유오형(流宥五刑)에서 비롯되었다. 주나라 형서(刑書)인 『여형(呂刑)』에 묵(墨 : 刺字,얼굴에 죄인 문신하기)·의(劓 : 코 베기)·궁(宮 : 거세)·비(剕 : 발뒤꿈치 베기, 아킬레스건 자르기)·살(殺 : 사형)의 다섯 가지 형벌이 소개되는데, 이는 신체를 훼손하는 체형이다.(다음 사전 재인용) <효경(孝經)>에도 보면 “오형의 무리가 삼천이로되 불효가 가장 큰 죄다.(五刑之屬三千 不孝莫大焉)”이라 하였다. 서민이 짓는 가장 큰 죄는 불효가 맞다. 그러나 위정자의 죄 중에서 가장 큰 죄는 반역이나 매국일 것이다. 그들을 ‘능지처참’에 처할 것인지는 역사가 알 것이다.(과연 지금 이런 형벌이 가능할까?)

사형의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나마 나은 죄인은 바로 죽이고, 아주 악독한 사람은 사약을 먹고 한 달 후에 죽게 하였다고 한다. 그 중 가장 악랄한 사형의 방법이 바로 ‘능지처참’이라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사용하고 있지만 이 형벌을 당한 사람 중에는 죄 없이 죽어야만 했던 사람들도 많다. 서태후의 질투에 의해 그렇게 죽어간 여인도 있고, 임금의 시기에 의해 그렇게 당한 사람도 있다.

 역사는 항상 승리자가 기록한다. 그러니 이긴 자의 입장에서 기록할 수밖에 없다.(억울하면 승리해야 한다) 그러니 능지처참을 당한 사람도 죄를 만들어서 붙인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능지처참을 당해야 하는 사람도 많은가 보다. 뜻을 알고 보면 함부로 쓰기에는 무서운 단어인데, 매일 이런 단어를 보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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