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이야기
언니 이야기
  • 최태호 스페셜 칼럼
  • 승인 2019.11.07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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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br>최태호 교수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최태호 교수

[국민투데이 전문가 칼럼=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베이비 부머 세대는 기억하는 노래가 있다. 졸업식 날 부르던 노래 중에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아마도 나이 지긋한 독자들이 이미 가슴 속에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노래가 끝날 때 쯤 되면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도 들렸다.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라고 했다)를 졸업하고 20리가 넘는 중학교를 다니려면 고생문이 훤하기도 했고, 교복입고 광내는 것이 어른스러워지기도 했기 때문이리라. 필자도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형을 언니라 불렀다. 다른 집 아이들은 다 형이라고 부르는 것이 이상하기도 했지만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부르곤 하였다. 그리고 중학교에 가서부터 형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으로 알고 어렵게 고친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흥부전>에서도 형을 언니라고 부른다. “전라경상 지경에 두 사람 사니 / 놀부라는 짝 업시 모진 ‘언니’와 / 흥부라는 어질기 한 업는 아우 / 두 ‘동생’의 압뒤 일 볼만하도다 / 어버이 돌아갈 때 끼친 세간을 / 놀부 혼자 가지고 아우 흥부는 / 구박하야 한데로 내어떠리고”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 보면 놀부를 ‘언니’라고 칭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지난 5월 27일 자 칼럼(이상하다. 형도 동생(同生)인데)에 보면 형도 동생과 같은 말이라고 하였다. 같은 배에서 태어난 사람을 동생이라고 하고 형도 같은 어머니를 두고 있으니 동생이 맞는 말인데 어의(語義)가 축소된 경우라고 설명하였다. 위의 예문에도 “두 동생의 앞뒤 일 볼만 하도다.”라고 하여 형제를 일컬어 동생이라고 하였다. 오늘의 주제는 ‘언니’라는 단어다. 어찌하여 형을 ‘언니’라고 부를까? 왜 과거에는 형을 언니라고 했는데, 지금은 자매 간에만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할까 하는 것이다.


 혹자는 일본어 ‘어니’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낭설이다. 물론 일본어에서 남성이든 여성이든 동성(同性)의 손위 사람에게 폭넓게 적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도 ‘형님’이라는 단어를 여성들 간에도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생각할 수 있다. 필자의 아내도 친한 형님의 아내 중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형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이와 같이 ‘어니’도 두루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이것은 일본어의 영향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19세기 말의 문헌에는 ‘언이’로 나타나 있다. 예전에 불린 동요 중에 <싀집간 언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 가사에 보면 “언이가 멀리 싀집가든 날”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여기서는 여성으로 한정되어 나타난다. 이것이 20세기에 들면서 ‘언니’로 기록되었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언이’라는 단어가 나타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50~60 대의 동래 정씨 양파공파(陽坡公派) 남성들은 어려서부터 ‘형’이라는 말을 쓰면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형’ 대신 ‘언니’를 쓰고 있다고 한다. 동래 정씨는 알아주는 명문가다. 이런 가문에서 ‘형’ 대신 ‘언니’를 쓴다는 것은 그 유래가 자못 오래 되었음을 알 수 있다.(조항범, 우리말 어원이야기) 언니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주 멀리까지 갈 수 있다. 인도 드라비다어족 타밀어는 형, 언니, 오빠, 누나를 모두 ‘안니’라고 한다.(우리말로 외국어 어원풀기. 다음카페) 고대로 올라갈수록 어원은 비슷하게 나타난다. 필자가 한국어학과인 관계로 우리 과에는 유학생들이 많다. 요즘은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에서도 많이 온다. 우즈베키스탄의 언어에도 ‘오빠(어빠opa  [어파] )’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것은 누나, 누이, 누님, 매씨(妹氏), 형(兄), 자씨(姉氏)를 두루 칭하는 말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언어도 우리와 같은 알타이어 계통이다. 이를 통해서 볼 때 어빠나 오빠가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는 손위 사람을 칭하지만 과거엔 상당히 폭넓은 의미였다고 본다. 그러므로 고대의 알타이어가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들어가 다시 역이민 하듯이 들어와 의미확장과 어의 축소 과정을 두루 거친 것이다. 일제강점기하에 들어 왔다면 <흥부전>에서 형을 ‘언니’라 한 것을 어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또한 동래 정씨와 같은 명문가에서 지금까지도 ‘형’을 ‘언니’라고 지칭할 수가 있는가? 원래는 남녀 가릴 것 없이 손위 사람을 지칭하던 말이 의미가 축소되어 손위 여성만을 지칭하는 것이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일부 학자들은 과거에 남자를 언니라고 부른 것은 잘못이라 하기도 한다. 그에 대한 논의는 지면 관계상 차후로 미루기로 한다. 본고에서는 일단 일본어의 유래가 아니라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언어는 마치 살아 있는 생물과 같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소멸한다. 처음의 의미를 그대로 지니고 있으면 좋을 텐데, 이렇게 자꾸 변하여 어렵게 하고 있다.(그 덕분에 필자도 먹고 살기는 하지만‥‥‥아무튼 외화수입에 기여하는 필자는 확실히 애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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