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도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그들도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 최태호 스페셜 칼럼
  • 승인 2019.11.18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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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br>최태호 교수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최태호 교수

[국민투데이 전문가 칼럼=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필자는 고등학교 입학시험 마지막 세대이다. 물론 경기도 성남에 있는 학교라 경쟁률이 아주 높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떨어져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학생들도 있었다. 당시 서울에서는 이미 평준화가 되어 거주지에서 배정받는 일명 ‘뺑뺑이’로 고등학교에 진학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에 갈 때는 먼저 예비고사를 통과해야만 대입 본고사를 치를 수가 있었다. 그 후 예비고사와 본고사를 없앤 자리에 단일 시험으로 ‘학력고사’라는 시험이 들어섰고, 다시 암기 방식에서 사고력을 요구한다는 오늘의 ‘수학능력 시험’ 에 이르렀다. 하지만 같은 학력고사라도 선지원 후시험의 방식이 있었고, 수능시험도 1년에 두 번 보았던 첫 해는 200점을 만점, 그 후, 500점 만점, 400점 만점 등 이름이 같아도 입시제도는 하도 여러 번 변해서 그 과정을 기억할 수도 없다. 장관이 바뀔 때마다 업적용으로 바꾼 것이 아닌가 한다.

그 시절(60, 70년 대)에는 권력의 제왕들, 돈의 제왕들도 많았다. 권력이면 뭐든지 못 할 것이 없었고, 안 되는 것은 더욱 없었다. 다행히 그들은 오늘날까지 한 번도 스스로 한 번도 자신들이 깨끗한 DNA 라고 떠들거나 정의롭다고 한 적은 없었다. 어느 정도는 자신들의 권세를 부끄러워했기에 시대 상황을 나무라며 핑계라도 될 줄은 알았다. 그랬던 그들도 딱 하나 만큼은 범접하지 않은 것이 있다. 아니, 이 하나만큼은 반드시 지켰다. 바로 자녀들의 대학입시다. 군사정권의 권력자의 상징인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도, 대학 하나 쯤은 사거나 지을 수도 있을 현대, 삼성, 대한항공 등 수많은 대기업 인사들도 자녀들 대학입시에 권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박정희는 국민들에게 대한민국의 기술 발전을 강조하며, 곱게 키운 금쪽같은 장녀를 공대에 보내는 것으로 실천했다. 그것도 SKY의 3개 대학에 하나에 들어가진 못했다. 외동 아들도 육군 사관학교에 보내 국방을 지키는 군인을 만들지언정, SKY에 보내지는 못했다. 이게 지행합일이다. (자신의 자식은 특목고 졸업시키고, 이제 와서 없애야 한다고 핏대를 세우는 사람들과는 부류들이나, 자기 자식은 유학 보내고 일반 국민들은 하향 평준화 고등학교에 가라 앉히는 그들과는 달랐다) 대통령의 자녀 중 전교 1등 한번을 놓친 적 없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밖에는 서울대 진학한 사람이 없다. 전두환의 아들은 재수까지 했다.

대기업의 자식들도 사교육은 시켰겠지만, 죽어라 쥐어짜며 공부든 체력장이든 스스로 해내야만 했다. 그렇게 삼성의 장녀도 Y대학 경영학과가 아닌, 아동학과에 진학했다. 현대의 정주영은 수많은 아들 증 드디어 서울대 입학이 하나 나왔다고 좋아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대한항공의 장남도 자신의 재단대학(인하대학교)에 졸업을 시켰지만, 정유라와 함께 그 졸업장마저 취소되었다.

지금 남의 집 자녀들 뒷조사나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그들도 지킬 것은 지켰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교육열로 우리나라는 개천에서 용도 났고 세계에 유래 없는 속도로 최빈국을 탈출하였다. 교육이 아니었다면 현재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힘 있는 사람이라도 당시에는 자신들이 겨루는 링은 구별할 줄 알았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가릴 줄 알았다.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확실하게 구분했다. 덕분에 그들은 현실은 아플지언 정, 남의 집 자녀들 미래까지 좌절시키려 들지는 않았다.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던 시절에도 교육이나 대학 진학에는 무리수를 두지 않았는데,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변하다 보니 요즘은 갖은 편법이 난무한다. 이제 다시는 개천에서 용이 나기는 다 틀려버린 듯하다. 그저 정의감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서 판•검사가 되는 길은 사라졌고, 법학대학원에서 스스로 학비 조달 없이 1억원은 지원 받을 수 있는 사람만 법관이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병원을 지었다는 현대나 삼성의 재단들도 시도하지 않은 가장 어렵다는 의사의 길을 시험 한 번 안 보고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과거의 권력자들도 열지 못했던 문을, 기회는 평등하고 결과는 공정할 것이라는 이들이 쉽게도 열어 버린 것이다.

무식한 이들이 잘 난 척 할 때, 혹은 정의로운 척할 때, 가장 손쉽게 하는 방법이 있다. 과정이나 역사는 필요 없다. 내용은 몰라도 일단 자기의 앞 세대를 독재자나 매국노로 매도하고, 모든 권력을 다 쥐고 흔든 사람처럼 욕하면 된다. 마치 자신만이 가장 정의로운 영웅이라도 된 양 외치는 것이다. 그러면 군중들은 동요하거나, 반론을 재기하면 무식해 보일까봐 입을 닫는다.

남을 욕하기는 쉬워도 남들 앞에서 모범을 보이며 살아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은 그리도 잘 보면서 자신의 눈에 들어 있는 들보는 어찌 그리 못 보는가? 야인으로 있을 때에는 모든 말을 마음대로 해도 되었지만, 사실 그 시절에 외치던 구호가 자신을 찌르는 칼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이제는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덤만 파면서 무슨 미래를 보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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