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와 문화문법
한국어와 문화문법
  • 최태호 스페셜 칼럼
  • 승인 2019.11.2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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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br>최태호 교수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최태호 교수

[국민투데이 전문가 칼럼=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5~6년 전 쯤 된 것 같다. 당시 독일의 본대학교에 근무하던 후배(윤선영 교수, 현 비엔나대학교 , 2019년 11월 27일 대산문학상 번역부문 대상을 받았다)가 문화문법에 관한 발표를 하였다. 상당히 충격적이었고, 그 후에 한국에도 도입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부탁하여 독일에 있는 화장실 표어를 수집했고, 한국에 있는 화장실 표어를 분석해 보았다.(윤 교수가 먼저 시범을 보여 주었다) 다행히 후배가 바로 자료를 보내주어 잘 활용하고 있다. 독일의 화장실에는 참으로 험악하게 그려져 있었다. “남자들아 제발 앉아서 쏴라.”, “앉아서 누지 않으면 짤라서 찢어버릴껴.”, “오줌 튀기지 말고 좀 안자서 봐!” 등과 같이 직설적인 표현만 가득했다. 그래서 우리 학교 화장실에 있는 문구를 다 모아서 비교해 보았다. 아마 독자들도 많이 보던 것들이 있을 것이다. “남자가 흘려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죠.”, “당신은 장총이 아닙니다. 권총이니 앞으로 한 걸음만~~~.”, “ 내 집처럼 깨끗이~~~”, “한 걸음만 앞으로 오신다면 오늘 본 것은 비밀로 하겠습니다.”와 같이 애교가 들어있고, 유머와 위트가 가득하다. 화장실에 가서 일을 봐도 즐거운 마음으로 볼 수 있게 배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독일사람들은 직선적이어서 돌려 말하면 알아듣지 못하고 짜증을 낸다.

출처=최태호교수
사진=최태호교수

 

이렇게 직설적인 사람들에게는 그에 맞는 번역을 해 주어야 한다. 아무리 “남자한테 좋은데, 참 좋은데, 뭐라 할 수가 없네.”라고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고 오히려 화를 낸다. 어쩌라는 말이냐고 성질부린다. 실제로 이 동영상을 윤 교수가 독일과 미국 사람들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니 한국인의 언어습성을 그들에게 얼마나 잘 이해하게 하고 알아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문제였다.

요즘 유행하는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얘기를 수업시간에 해 보았다. 외국인 중에 알아듣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군대 얘기를 해 보았다. “김 병장 애인이 고무신 거꾸로 신었대.”라고 칠판에 써 놓고 자국어로 번역해 보라고 했더니 제대로 번역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한국인은 누구나 다 ‘고무신 거꾸로 신다, 고무신 바꿔 신다, 워커 바꿔 신다.’ 등으로 얘기하면 다 알아 듣지만 군대문화를 모르는 외국인들에게는 생소할 따름이다.

“얼굴색이 누렇게 떴어.”, “오줌이 뇌리끼리 해졌어.”, “저기 저 노르스름한 것이 뭐야?”등과 같이 ‘노란 것’도 종류가 무지하게 많다. 그런가 하면 예전에 교통안내 방송 중에 ‘푸른신호등’이라는 프로가 있었다. 신호등도 푸르고, 하늘색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산도 푸르다. 초록색이나 하늘색이나 바다색을 모두 푸르다고 하였다. 하기야 옛날에는 오색무지개라고 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색깔에 대한 개념이 어떤 때는 엄청나게 포괄적이고 어떤 때는 무지막지하게 자세하다. “날씨가 차니 볼태기가 시푸르딩딩하네.”라는 표현도 한다. 한국인 독자들은 이미 ‘시푸르딩딩’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 가슴에 와 닿을 것이나 외국인들은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사진=최태호교수
사진=최태호교수

 

신체에 관한 내용도 그렇다. 엉덩이, 궁둥이(궁뎅이, 방뎅이 : 길짐승의 엉덩이, 사람의 엉덩이를 속되게 이르는 말, 주로 여자의 것을 이를 때 많이 씀) 등도 그렇고, ‘이, 이빨, 치아’, ‘나이, 연세, 춘추’ 등등을 설명하면 외국인학생들은 정신이 없다. 물론 중급은 넘어야 가르치기는 하지만 한국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언어의 멋과 맛이 외국인에게는 어려울 때가 많다. 사고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는 합당한 번역이 필요하다. 이러한 맛깔나는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양쪽의 문화에 정통해야 한다. 한 쪽만 자세히 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이중언어와 문화에 두루 능통한 사람만이 올바른 번역을 할 수 있다. 앞으로는 통역도 AI가 대신하게 될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계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가장 인간적인 번역은 인간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표정과 몸짓도 인간만의 특권이다. 인간에게는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이 있다.

한국에 문화문법을 도입하여 알리기 시작한 것이 4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이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제는 단순한 번역만이 아닌 문화를 제대로 알고 번역하는 프로의 모습을 기대한다. (“사쁜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는 어떻게 번역해야 맛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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