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와 바보
어리바리와 바보
  • 최태호 스페셜 칼럼
  • 승인 2020.02.17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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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br>최태호 교수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최태호 교수

[국민투데이 전문가 칼럼=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필자는 거의 매일 한국어에 관한 문자를 지인들에게 보낸다. 틀리기 쉬운 우리말이나 한자어, 맞춤법과 띄어쓰기 등을 보내면 조금 후에 질문이 들어온다. 개인별로 답을 할 때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단체카카오톡방(단톡방?)에 올리기도 한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은 쉬는 의미로 잘 올리지 않았는데, 요즘은 읽는 사람이 제법 많은지 여러 가지 질문이 들어오기도 한다. 한자어부터 헷갈리는 말 풀어달라는 것 등이다. 그 중 질문이 가장 많이 들어온 것이 위의 제목에 있는 ‘어리바리’에 관한 것이었기에 자세히 풀어 보려고 한다.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어리버리’라고 알고 있는 모양이다. 대표적인 질문이 “모음조화에 어울리지 않으니 ‘어리버리’가 맞는 것 아니냐?”는 것과 “모든 사람이 어리버리라고 하는데, 그러면 그것이 표준어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등이다. 우선 어리바리의 뜻은 ‘정신이 또렷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어 몸을 제대로 놀리지 못하고 있는 모양’을 말한다. 이 단어는 ‘어리숙하다’의 어근과 사람을 나타내는 접사 ‘바리’가 합쳐진 것이다. 즉 ‘어리숙하다’는 “겉모습이나 언행이 치밀하지 못하여 순진하고 어리석은 데가 있다.”는 의미와 “제도나 규율에 의한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아 느슨하다.”는 의미가 모두 들어 있다. ‘어리’라는 어근에 사람이라는 의미의 ‘바리’가 붙은 것이니 모음조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바리’라는 단어는 현재 접사로 사람을 나타내고 있으니 다음의 단어에서 알 수 있다. 악바리(惡人), 군바리(軍人), 쪽바리(倭人), 혹부리(瘤人), 학비리(學生), 꽃비리(사춘기의 남녀) 그리고 제주도 방언의 비바리(處女), 냉바리(寡婦) 등과 같다.<서정범, 새국어어원사전> 고문헌에는 흥정바지(商人), 노랏바치(才人), 등과 같은 것도 있으니 어근 ‘발, 불, 빌’ 등이 사람을 나타내는 우리말임을 알 수 있다. 이 어근은 다시 ‘받, 붇, 빋’으로 변하여 ‘바치’(갖바치)까지 변했음을 본다. 그러므로 ‘바리’는 순수한 우리말 ‘사람’이라는 접사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어리바리’가 맞는 말이다. 모음조화와 관계없이 이루어진 합성어이다. 한 때 군바리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필자도 총각 때 친구의 결혼식 사회를 보면서 장교들에게 “군바리 모두 나와!”라고 했다가 질책을 받은 적이 있다.(친구가 육사를 졸업한 장교였다.) 생각해 보면 ‘군바리’라는 말이 그리 좋은 의미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약간 비하하는 의미로 ‘바리’를 쓴 것이 아닌가 한다.

또한 사람을 이르는 다른 말로 ‘보’가 있다. ‘바보’는 ‘어리석고 못난 사람’이다. ‘떡보’는 ‘떡을 잘 먹거나 좋아하는 사람’, ‘술보’는 ‘술을 잘 마시는 사람’, ‘잠보’는 ‘잠을 잘 자는 사람’등과 같이 우리말에 ‘보’가 붙으면 ‘잘 하거나 00에 빠진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친구 별명 중에 ‘울보’는 늘 있어 왔던 것이 아닌가? 사실 ‘놀보, 흥보’도 처음에는 보(甫)를 썼다. 지금은 주로 놀부와 흥부라고 하여 ‘부(父)’를 쓰지만 과거에는 항상 ‘흥보’라고 했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바보’는 어째서 ‘어리석고 못난 사람’을 의미하게 되었을까? 먹보나 잠보, 울보, 떡보 등은 그 의미가 금방 와 닿는데 비해 ‘바보’는 그리 쉽게 의미가 와 닿지 않는다. 필자가 보기에는 ‘밥’에서 ‘ㅂ’이 탈락한 것이 아닌가 한다. 즉 ‘밥만 먹고 일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밥보’가 바보로 된 것이라고 유추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바보 대신 ‘밥통’이라는 말도 같이 사용해 왔다. ‘밥만 축내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이와 같이 ‘보’가 사람을 나타내는 것은 일본어에서도 볼 수 있다. 일본어에서 어린 아이를 ‘akambo'라고 하며 잠꾸러기를 ‘nebo'라고 한다. 우리말의 ‘보’가 일본으로 넘어가 그대로 안착된 것이다. 일본의 고어는 대부분이 신라어나 백제어임을 고려한다면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또한 일본어의 방언에서 ‘bare'가 사람을 뜻하는데, 이것은 위에서 말한 ’바리‘가 넘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언어는 주변국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그래서 한국어를 잘 하면 외국어를 이해하는데 상당히 쉽다. 영어만 열심히 하지 말고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길이 세계인이 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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