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과 부락
마을과 부락
  • 최태호 스페셜 칼럼
  • 승인 2020.07.20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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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br>최태호 교수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최태호 교수

[국민투데이 전문가 칼럼=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요즘 금산군 제원면의 마을 이야기를 집필하고 있다.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이야기를 채록하고, 마을의 역사와 유래 등을 조사하면서 마을이라는 단어와 부락이라는 단어의 차이를 이야기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어느 곳은 00부락이라고 하고, 어느 곳은 00마을이라고 하는 등의 차이가 있었다. 특히 충청도에서는 아직도 마을이라는 용어보다는 ‘마실’이나 ‘마슬’이라는 용어를 많이 쓰고 있다. 원래 마을은 고어에 ‘ᄆᆞᄉᆞᆯ(신문으로 편집할 때 글자가 없을 것 같아서 설명을 보탠다면 ’ㅁ + 아래아‘와 ’반치음ᅀ+ 아래아 + ㄹ’로 이루어진 글자다)인데, 어근이 ‘ᄆᆞᆺ’이며 일본어의 ‘mura(村)’가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가야지역의 지명에 ‘久斯牟羅’, ‘久禮牟羅’, 布羅牟羅‘ 등의 지명이 나오는데, 여기에 나타난 ’모라(牟羅)‘가 지명접미사로 쓰였다는 것이다.(서정범, <새국어어원사전>) 그러므로 일본어의 ’무라‘는 우리말의 ᄆᆞᆺ(ᄆᆞᆮ)’이 건너가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바리실마을’, ‘닥실마을’이라고 쓰는 것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린 멋스러운 표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실’이라는 말도 ‘넓은 분지형의 골짜기’를 말하는 것이라 겹치는 단어이기도 하다. 마을이름에 ‘모래실’, ‘배실’ 등과 같이 ‘실’자가 들어간 곳이 많다. 아주 넓은 분지는 아니지만 여러 가구가 모여서 살 만한 넓은 공간을 말하는 것이니 ‘마을’과는 조금 의미상 차이가 없지만 과거에는 그냥 ‘실’자만 가지고도 마을이라는 의미를 충분히 나타냈었다.

한편 ‘부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동네도 있다. 한자로는 ‘部落’이라고 쓴다. 이 말은 <고려사>, <삼국사기>, <태조실록> 등에도 나오는 오래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썩 좋지 않은 의미를 부여받았다. 과거에는 변방의 부족들이 씨족의 단위로 형성된 자연취락을 부락이라고 했다. ‘부(部)’는 ‘부분’이라는 뜻이고, ‘락(落)’은 따로 떨어져 있는 곳‘이라는 말이니 합하면 ’따로 떨어져 모여 살고 있는 마을‘이다.(정진환, <신문 속의 언어지식>) 하지만 평범하던 단어가 일본에서 에도(江戶)시대를 거치면서 ’천민의 거주지‘라는 말로 추락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부락민‘이라고 불렀다. 이 부락민들은 일본의 전역에 공동체를 형성하며 대부분 저임금 단순노동에 종사하면서 살고 있다. 메이지유신 초기에 ’부락민해방령‘을 공표하여 공식적으로 해체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6,000여 개의 ’부락사회가 있고, 100만 ~ 300만 정도의 부락민이 있다.(정진환, <신문 속의 언어지식>) 이렇게 본다면 원래는 좋은 우리말이 일본에 건너가서 천시당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고어가 백제어나 신라어임을 고려한다면 마을이나 부락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다만 하나는 자연스러운 말로 일본어가 되어 ‘mura’로 정착했는데, 부락은 일본으로 건너가 한자 본연의 의미를 잃고 일본식으로 새롭게 해석하여 천민의 거주지로 탈바꿈했다.

우리나라의 마을이름도 좋은 우리말이 많은데, 한자로 바꾸면서 의미와 발음상에서 이상이 생긴 것도 많다.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잘 사용되고 있는 것이 마을이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천민들의 거주지’로 바뀐 것이 부락이다. 지금 우리 농촌의 마을 중에는 마을이라는 단어보다 00리(태평리, 용화리)라는 표현을 가장 많이 쓰고 있다. 때에 따라서 00동(洞)이라고 쓰는 곳도 있다. 초미동이나 안서동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지금은 읍·면단위는 ‘리’를 쓰고, 시단위는 ‘동’을 쓰는 것으로 일반화되었지만 과거에는 골짜기나 계곡 등에도 동(洞)을 쓴 곳이 있다. 제원에도 화상동(和尙洞)이라는 골짜기가 그것이다.

이제는 마을이름이나 골짜기의 이름도 그 유래에 맞게 재정비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억지로 한자로 만든 것보다는 아름답고 정감있는 우리말 마을이름을 되살리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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