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축(嚬蹙)과 수염(鬚髥)
빈축(嚬蹙)과 수염(鬚髥)
  • 최태호 스페셜 칼럼
  • 승인 2020.07.27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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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br>최태호 교수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최태호 교수

[국민투데이 전문가 칼럼=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오랜만에 한자놀이를 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을 알아보기로 한다. 조금 어려운 말일 것 같은데 ‘빈축을 사다’라는 말이 있다. 그 뜻은 “눈살을 찌푸리고 얼굴을 찡그린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비난이나 미움을 이르는 말”이다. 예문으로는 “한때 철없는 일부 유학생들이 짧은 기간 동안 유흥가에 엄청난 액수의 돈을 뿌리고 가 뜻있는 사람들의 빈축을 많이 샀던 적도 있었다.”와 같이 쓸 수 있다. 요즘은 정치인들이 말실수로 빈축을 사는 일이 많아졌다. 원래 ‘빈(嚬)’은 ‘양미간을 찌푸리는 것’을 말하고, ‘축(蹙)’은 ‘이마를 찌푸리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얼굴을 찡그리며 불쾌함을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하겠다. 이 말은 원래 <맹자>에도 나오고 <장자>에도 나온다. 먼저 <맹자>에 나오는 예화를 보자. 제(齊)나라의 진중자(陳仲子)라는 청렴한 선비가 있었다. 어느 날 고위 관리로 있는 형의 집에 들렀다가 누군가 형에게 거위를 주는 것을 보고 뇌물이라고 생각해서 얼굴을 찌푸렸다. 며칠 뒤 어머니가 거위를 잡아 밥상에 올렸는데, 알고 보니 그때의 거위였다. 그래서 밖에 나와 다 토해버렸다고 한다. 또한 비슷한 시기인 <장자>에도 빈축에 관한 고사가 전한다. 이것은 효빈(效顰)이라는 고사와도 함께 전한다. 때는 중국 전국시대(B.C. 286년)였다. <장자(莊子)> 「천운편(天運篇)」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춘추시대 월(越)나라에 서시(西施)라는 아주 유명한 미녀가 있었다. 서시는 가끔 위장병으로 고통을 받았는데, 증세가 나타나기만 하면 손으로 심장 근처를 누르고 눈살을 찌푸리곤 했다. 그런데 서시가 아픔을 참으려고 눈살을 찌푸리는 모습까지도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했다. 그러자 이웃 마을에 동시(東施)라고 하는 아주 못생긴 여자가 살았는데, 어느 날 서시를 보고는 그녀의 흉내를 내며 두 손으로 심장을 누르고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마을을 돌아다녔다. 마을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놀라서 다들 달아나거나 숨었다고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이와 같이 두 개의 이야기가 전하고 있는데, 우리에게는 <장자>의 것이 많이 알려져 있다. 아무튼 미간을 찌푸리는 것을 빈(嚬)이라 하고 이마를 찌푸리는 것을 축(蹙)이라고 한다. 이것이 변하여 현대에 와서는 ‘눈살을 찌푸리고 얼굴을 찡그린다는 말로 남을 비난하거나 미워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여기서 유래한 효빈(效顰)이라는 말을 직역하면 ‘눈살을 찌푸리는 것을 본뜬다’는 말인데, 함부로 남의 흉내를 내는 것을 이른다. 서시가 눈을 찡그리고 이마를 찌푸리자 그것이 아름다운 것인 줄 알고 못난 여자들이 눈을 찡그리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인 줄 알고 따라서 눈을 찡그리고 다녔다는 것에서 기인한 말이다. 예문으로는 “심지어 부모의 핏줄을 타고난 까만 머리털까지 노랗게 물들여 가면서 효빈을 일삼는 판이니 세상이 참으로 개탄스럽구나.”라고 할 때 쓰는 것과 같다.

이런 종류의 단어가 우리말에는 참으로 많다. 수염(鬚髥)도 그 중의 하나다. 원래 수염은 그 지시하는 바가 각각 다르다. 수(鬚)는 턱수염을 일컫는 말로 ‘동물의 입언저리에 난 뻣뻣한 긴 털, 옥수수의 낟알 틈에 가늘고 길게 난 털’을 일컫는 말이다. 염(髥)은 우리말로 하면 ‘구레나룻’을 말한다. 즉 귀밑에서 턱수염 언저리까지 난 털을 ‘염’이라고 한다. 나이가 지긋한 독자들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구레나룻을 생각하면 쉽다. 이와 같이 수(鬚)와 염(髥)은 지시하는 바라 다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을 합하여 “성숙한 남자의 입주변이나 턱 또는 뺨에 나는 털”을 지칭하게 되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나이 70이 넘은 어른에게는 ‘수염’이라는 표현도 쓰지 않았다. 고희가 넘은 어른에게는 그냥 ‘염(髥)’이라고만 했다. 수염이라고 하면 불경스러운 표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수와 염의 구분도 없고, 경과 불경의 의미도 없이 그냥 얼굴이나 입 언저리에 나 있는 털을 모두 ‘수염’이라고 하고 있다.

우리말은 한자어에서 유래한 것이 많기 때문에 수시로 한자어를 익히면 어휘공부에 상당한 도움을 준다. 다행스럽게 요즘은 한자능력검정고시를 어린 학생들이 응시한다고 한다.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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