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白手)와 백수(白壽)
백수(白手)와 백수(白壽)
  • 최태호 스페셜 컬럼
  • 승인 2020.09.21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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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br>최태호 교수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최태호 교수

[국민투데이 전문가 칼럼=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오늘은 오랜만에 한자어 공부나 해 볼까 한다. 이름하여 백수 이야기이다. 실제로 필자는 살면서 하루도 백수생활을 해 보지 못했다. 남들이 들으면 기분 나쁜 소리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시대를 잘 타고 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어린 시절에는 지독히도 가난하게 살았고, 청년 시절에는 먹고 살 방법이 공부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대학에 진학했으며, 졸업과 동시에 순위고사(지금은 임용고시라고 한다.)에 합격해서 태능중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지금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기까지 근 40년을 교직에만 있었다. 이젠 조금 쉬고 싶을 때도 되었지만 막상 퇴직이 얼마 남지 않으니 조금 두렵기도 하다. 농사지으면서 살고 싶은 심정도 있고, 외국에 가서 한국어 가르치면서 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무엇인가는 하면서 살아야겠지. 백수생활하기는 싫다. 그래서 오늘은 백수 이야기나 해 보려고 한다.

백수라는 말은 여러 개가 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두 가지만 생각해 보련다. 우선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역시 백수건달에서 비롯된 ‘백수(白手)’가 아닐까 한다. 왜 하필이면 ‘하얀 손’이라고 했을까? 여기서 파생된 것이 요즘 젊은이들이 말하는 ‘WH(White Hand <- 하얀 손 <- 백수(白手))’이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다. 젊은 친구들을 만나서 “자네 요즘 뭐 하는가?” 하고 물었더니 “WH입니다.”라고 말하길래, 무슨 WH그룹이 있는 줄 알았다. 젊은이들의 재치가 드러난 말이지만 뭔가 가슴을 때린다. 얼마나 취업하기 힘들면 스스로 그렇게 표현하는지 슬프기만 하다. ‘백수’를 사전에서 찾아보자. “1.아무 것도 끼거나 감지 않은 손, 2.돈 한 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 먹는 건달”이라고 나와 있다. 누구는 놀고 싶어서 그러고 있겠는가? 사전적 정의라지만 젊은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은 아닌가 한다. 여기 서 ‘백(白)’은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이다. ‘건달’은 예전에 한 번 말한 바와 같이 불교에서 말하는 풍류의 신이다. 음악으로 중생들을 제도하여 부처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조선시대 불교를 천시하면서부터 건달이 ‘무위도식하면서 빈둥거리는 게으른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향가에는 건달파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사람들은 ‘일을 하도 안 해서 손이 하얗게 된 사람’이라는 의미로 백수라고 하는 줄 알고 있는데, 사실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에서 파생하여 ‘일이 없는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청년백수가 없는 사회는 진정 요원한 것인가 안타깝다. 어렵게 살던 사회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제발 캥거루족(부모님에 의지하여 사는 젊은이를 말하는 신조어)이 없어지기를 기원해 본다.

다음으로 또 다른 백수(白壽)를 살펴보기로 하자. 한자어는 다양한 의미가 있어 새로운 단어를 만들기에 적당하다. 하지만 이번에 소개하는 백수는 조금 다르다. 우리가 흔히 나이를 말할 때 쓰는 용어인데, 참으로 유머와 위트가 있는 단어다. 사람의 나이 ‘99세’를 일컬을 때 ‘백수(白壽)’라고 한다. 이에 대해서도 많은 질문을 통해 답을 하기는 했지만, 오늘은 문장으로 설명해 보고자 한다. 100세를 한자로 쓰면 ‘백세(百歲)’라고 한다. 너무 뻔한 얘기 같지만 동음이의어를 사용해서 100년을 살고자 하는 욕망을 담아 백(百)에서 일(一)을 뺀 글자(백(白)으로 ‘99’를 대신한 것이다. 그러니 백 살 같은 아흔 아홉 살이 된다. 흔히 아흔 살을 한자로는 ‘졸수(卒壽)’라고 한다. 처음에 졸수라는 말을 들으면 조금 놀란다. ‘졸(卒)’ 자가 ‘졸병’이라는 의미로 주로 쓰지만 ‘마친다(죽는다)’는 의미로도 쓰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운명하셨습니다.”라는 표현 대신 ‘졸(卒)하다’라는 표현도 쓰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90세를 ‘졸수(卒壽)’라고 했을까? 이것은 의미보다는 초서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한자로 흘려 쓰는 글자체를 초서라고 한다. 행서는 정자로 쓰기 때문에 알아보기 쉬운데, 초서는 흘림체라 필자도 모르는 글자가 많다. 卒을 초서로 쓰면 ‘九 + 十=九十’처럼 보인다. 같은 발상으로 77세를 희수(喜壽)라고 하는데, 이것도 희(喜) 자를 초서로 쓰면 ‘칠칠(七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의미와는 전혀 관계 없이 글자의 모양에 따라 나이를 지칭하게 된 것이다.

백수(白手)로 백수(白壽)를 살면 얼마나 힘들 것인가? 이젠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한국어는 참으로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있다. 아직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세계의 청년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공부하면 백수(白手)를 면할 가능성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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