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움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어두움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 최기복 스페셜 칼럼
  • 승인 2020.11.17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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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복 충청 효 교육원원장
최기복 충청 효 교육원원장

[국민투데이 전문가 칼럼=최기복 충청 효 교육원원장] 명백한 사실조차 부정하고 '내로남불'을 쏟아내며 욕설과 저주로 증오만을 키우고 있다. 이성은 없고 극단의 감정만 있다. 사실은 무시되고 조롱받으며, 주장과 선동만이 힘을 얻는다. 과거에 대한 고찰, 현재의 성찰, 미래에의 통찰은 설 자리를 잃었다. 극도로 분노하는 이들이 생기고, 동시에 극도로 좌절하는 사람도 생긴다. 이렇게 상대를 쓸어버리겠다는 극단의 적대 정치가 힘을 얻는 한 이 땅에 킬링필드를 재현하는 것 외에는 해결 방법이 없다."

위 글은 11월 9일 KBS의 황상무 앵커가 KBS에게 남긴 유언 같은 글이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확실한 것은 누구도 죽는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죽기 위해서 태어났고 죽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 인지도 모른다. 비겁하게 사느니 분투 중에 쓰러짐을 택한 사람들은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

목전의 이익에 정권의 주구가 되어 킬링필드의 죽창을 들고 설치는 사람들이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의 칼잡이 세력이 되어 국민을 2분 법적 잣대로 농단하고 진실은 은폐하고 사실을 호도하며 세치 혀끝으로 나라의 미래를 정권에 위탁하려 한다는 일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정권이 바뀌면 이들의 향배는 어느 방향으로 튈지 불을 보는 것처럼 환하다. 심지어 길 드려진 댓글 부대들은 유언처럼 남긴 그를 정치를 위하여. 정치적 토대를 마련하려는 쇼로 폄훼한다. 이것이 공영 방송 KBS의 대 내, 외적 현실이라면 우리는 수신료를 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죽어야 할 이유가 없는데 내가 낸 돈으로 독약을 사서 마시는 꼴인데 1/2의 국민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어정쩡하게 노예 상태로 매달려 있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통곡 문을 써서 당시 황성신문 (1905년 11월 20일)에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비판하는 논설문을 게재하고 붓을 꺾었던 장지연 선생이 생각난다. 일제는 혹독한 시련을 안겨주었고 신문 은 90일 동안 정간되었다. 개, 돼지만도 못하다는 당시의 위정자들을 향한 그의 독립정신을 요즈음의 대한민국 위정자들은 뭐라고 표현할까? 이 또한 선택된 정신이라고 웃어넘길까? 요즈음 국민들은 매일 목 놓아 울고 있는데 저들은 보고 싶은 것 만 보고,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내뱉고 있다.

황상모 앵커? 장지연 선생이 오버랩된다. 제2의 황상모 제3의 황상모가 지속적으로 나온다면 내가 내는 수신료가 이렇게 아깝지는 않을 것 같다. 열흘 붉은 꽃 없고 단절의 역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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