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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치범수용소 군무자가 북한인권단체로 활동하는 이유...

정치범수용소 증견자, 유엔 인권기구 집중 조명
안명철대표를 소개하다

  • 이도건 시민기자 bandi0413@naver.com
  • 입력 2021.01.07 14:05
  • 수정 2021.01.07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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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단체 'NK워치'의 안명철 대표(탈북민)]
[북한인권단체 'NK워치'의 안명철 대표(탈북민)]

[국민투데이=이도건기자]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지난 4일 자체 웹사이트에 한국의 북한인권단체로 활동중인 ‘NK워치’ 안명철대표를 소개했다. 안 대표를 소개하는 글은 ‘정의 추구’라는 제목의 인터뷰 형식이었다.

북한인권단체인 ‘NK워치’ 안명철대표는 북한 정치범수용소 경비대출신 탈북민으로서 정치범수용소 실상에 대한 유력한 체험자이다.

OHCHR은 글에서 이에 대해 상세하게 밝혔다. 그러면서 안 대표와 NK워치’가 북한의 인권유린 상황을 기록하고, 특히 최근에는 그에 대한 상세한 사례를 담은 768건의 진정서를 유엔에 제출하였다고 소개했다.

안 대표는 원래 가문의 토대가 좋고 북한 정권에 충성한 부모 덕분에 1987년 국가보위부(당시)에 입대하여 정치범수용소의 경비병으로 발탁되었다고 한다.

그는 ‘완전통제구역’에서 종신형을 사는 정치범들은 혁명의 배신자들이며 인간이 아니라는 세뇌를 당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정치범수용는 정확히 ‘정치범관리소’라고 불리우며, 경비병의 임무는 탈출을 시도하는 수감자에 대하여 즉결 사살하라는 명령을 집행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안 대표의 탈북 동기는 1994년 아버지가 부당한 책임을 지고 ‘연좌제’에 따라 어머니와 형제 등이 모두 수감된 것이 시점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자신이 군무하던 수용소가 불법적인 수감시설임을 인지하게 되었고, ‘연좌제’에 따른 자신에 대한 체포를 감촉하면서 탈북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당장 체포가 단행되려던 당시인 1994년 7월, 김일성의 사망으로 체포가 미뤄진 것이 살아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다고 그는 말하였다.

“결국 김일성이 나를 구원한 셈입니다.”

그의 말에서 일종의 쾌감이 느껴졌다.

수용소 생활이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는 즉시 탈북을 하였던 것이다. 지금까지도 가족들의 생사여부는 알지 못한다고 한다.

1998년 미국 의회상원에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 대해 진술하면서 북한 인권실상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시작한 안 대표는 다른 정치범수용소 생존자들과 그 가족들과 함께 2003년 ‘NK워치’를 설립했다.

‘NK워치’는 정치범 수용소에서의 공개처형, 고문과 구타, 성폭행, 굶주림과 질병, 강제노동 등 잔혹한 인권침해를 고증하고 알려왔다고 안 대표는 설명했다.

또한 2013년 이후에는 유엔의 강제실종실무그룹이나 자의적 구금실무그룹에 북한 정권의 인권유린 피해자들을 대신해 진정서를 정기적으로 내왔으며 현재까지 이런 진정서가 768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NK워치’가 제출한 진정서에 대해 북한으로부터 40여건, 중국으로부터 3건의 답변을 받았다고 안 대표는 덧붙였다.

북한 조담에서 개미 만 마리면 망돌을 굴린다는 말이 있다. 제 아니 ‘독재국’이라 할지라도 탈북민들의 거세찬 투쟁과 그에 공감한 진정한 인간애들이 있어 기어이 무너지고 말리라는 확신이 다시금 굳어짐을 기자는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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