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장편연재] 사기꾼들⑧

3-2. 성삼몽과 처삼간 남산대시절

  • 신상성 소설가 webmaster@kukmini.com
  • 입력 2021.02.04 02:10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때쯤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군사독재이어서 전국의 대학가는 매일 데모로 혼란스러웠다. 군사정권은 전국의 흉악한 조폭들과 영등포 홍등가 등 여인들을 반강제로 잡아오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립할 수 있는 땅을 일정하게 배분하여 주었다.

그 개척지역이 새만금 뻘밭 등이었다. 거기서 스스로 개척하여 살도록 당과 집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전국 대학의 4H 클럽 동아리들이 이들에게 배분해 준 땅에 대한 과학적 영농방식과 노동력 지원에 참여한 것이다. 새마을운동의 하나이다. 성삼몽은 쌩쥐와 격투를 벌이면서도 어이없게 그와 함께 노력봉사 하던 새만금 뻘밭을 떠올린 것이다.

한창 젊은 2십대 우리들의 우정을 기억해낸 것이다. 기억이란 때로 우스운 것이다. 극한상황에서도 정반대 극한 평화장면이 기억되다니? 우습다. 맞았어! 지난 주인가, 성삼몽이 사는 요진아파트에 현관에 붙어 있던 붉은 경매딱지를 누가 붙였는가? 의아했는데, 바로 요 쌩쥐 새끼 처삼간 기획실장의 기획이었구나.

이판에 학교를 탈취하자는 연장선상에 지금의 폭력이 이어진 게 아닌가, 맞았어? 녀석은 이대로는 대학운영이 어려워질 기미가 보이자 자기가 투자한 돈이 날릴지도 모른다고 성삼몽 총장을 폭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위협하여 빨리 빼낼 궁리였던 것 같다. 기한유 교수와 짜고 성삼몽 아파트부터 경매를 붙인 것이다. 그 경매금을 나꾸어 채려고 공모했던 것이다.

교육가와는 달리 사업가의 핏빛 색깔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 같다. 아니 누구나 당연한 게 아닌가. 누구나 자기 본전 생각을 먼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삼몽은 다시 쭈욱 뻗었다. 무엇인가 둔탁한 철봉으로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뜯어말리던 멧돼지 하근육 총무처장도 돌변하여 성삼몽을 습격했다.

두 명의 구둣발이 성삼몽의 얼굴을 짓이겼다. 그리고 그 두 명이 어깨동무하고 사라지는 뒷모습이 가로등 불빛에 하리하게 빛났다. 오늘 멧돼지가 저녁식사를 하자고 불러낸 곳이 왜 이렇게 으슥한 식당인가 했더니 역시 사전에 둘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던 것이다. 외지고 어두워서 폭행하기에는 안성마춤이다. 그 두 명의 집도 이 근처이다.

시골 기차역 경주 첨성대 굴뚝같은 소각장이 폭파되었다. 어엉! 곁에 누워있던 환자들이 후닥딱 일어나 침대 위에 앉아서 소각장의 파편들이 시원하게 날리는 것을 만끽하며 소리쳤다. 동화 속 요정집 같은 첨성대가 통쾌하게 날아가는 CNN TV 화면은 뒤로 빽! 했다가 같은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다. 곧이어 모택동 개량복장을 한 김정일 위원장이 오겹살 배불뚝이 더욱 앞으로 내밀며 소리쳤다.

“야아, 저 인민복, 박정희 때 새마을 재건복 아냐?”

“맞았어! 새북종이 울렸네, 우리 모두 일어나아~ 우리들 젊은 공무원 시절에 새벽 6시면 일제히 운동장으로 쏴아 나가면서 새마을노래 불렀지롱, 근데 저 김정일 아자씨가 정말 즤덜 보물단지 같은 저 핵단지 굴뚝을 왜 폭파시키는 거야?”

“이 허깨비 영감, 영 깡통이래두? 된돌 깡통이네에, 조런 장난감 같은 소각장은 천개만개를 폭파혀도 다 쑈랑께네에, 핵 시설은 땅 속 지하 수 백 미터 개미굴 같은 땅굴을 파서 핵 실험을 하제, 누가 조런 모래집 부쉈다고 핵 시설이 파괴되여? 다 쑈야 쑈.”

성삼몽도 일어나려고 했으나 허리가 움직여 지지 않았다. 며칠 전, 쌩쥐와 멧돼지의 골프채 무당춤에 얻어맞아 전신이 저린다. 약10주 진단이라던가. 중상이다. 양쪽 눈 각막도 터지고 갈비뼈도 5대나 나가 숨 쉬기도 가쁘다. 곁의 환자가 성삼몽 잘 보라고 TV를 돌려주었다. 장난꾸러기 같은 노무현 대통령이 성총장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 뒤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나와 두 지도자는 포옹했다. 전세계로 중계되고 있었다.

‘반미(反美)면 좀 어떠냐?’ 나중에 운동권들에게는 진리 같은 명언이 되었지만 바로 그 낱말이 CNN 흑인 여성 아나운서의 뻘겋고 큰 입술 사이로 반복해서 터져 나왔다. 그 아래 자막에는 ‘한미정상회담 공동선언 2003.05.14.’ 어쩌구 하며 흘러나갔다. 김정일은 핵 실험을 중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 미국과 유엔 등에서 눈깔사탕 같은 달러를 일정하게 쏟아 붓겠다고 공언하는 장면이다. 평양에선 얼씨구나 그 달러로 또 핵 실험을 계속할 것이다. 장난감 같은 첨성대 하나 폭파시키고 수 백 억을 긁어내는 수법이다. 1953년 후전 이후 지금까지 지루하게 찜쪄 먹는 복습이다. 미국은 속으면서도 새 대통령이 되면 또 반복한다. 그들은 북한과의 문제가 가장 큰 실적이 된다.

“여보, 이 편지가 또 들어왔네요?”

성삼몽의 아내는 뜨끈뜨끈한 복어죽 한 그릇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며 봉투를 내밀었다. 성 총장이 소독약 냄새가 스며든 병원 밥을 먹지 못하자 그미는 아침 저녁으로 자기가 직접 끓인 영양죽을 대령해 왔다. 밤이면 집에도 가지 않고 그의 침대 옆 쪽침대에서 쪽잠을 잤다. 막내아들이 마침 영국 런던대학에서 귀국하여 집에 있었으나 녀석도 외교부 산하 무슨 정부기관에 알바를 나간다.

외교부 숙직실에서 외교문서 등 밤샘 번역작업을 하느라 집에 안 들어온다. 1998년도 IMF로 폭락한 한화로 유학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대부분의 해외유학생들이 대거 귀국했다. 그러나 녀석은 특별성적 외국인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좀더 버텼으나, 결국 숙식비 등 감당할 수 없어서 런던유학을 중단하고 귀국하게 된 것이다.

숙식비라야 매달 천 달러도 안 되었지만 그거조차 댈 수 없었다. 성울대 교직원 월급을 매달 조달하느라 일수 달러를 빌려서 비벼대도 그것도 잘 안 되는 판국에 아들 유학비 송금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용가리 대학에서 나오는 쥐꼬리 월급은 전부 성울대 법인부채 이자로 다 나가도 모자란다.

아내가 성삼몽 허리 밑으로 밀어 넣어준 흰 봉투를 꺼냈다. 용가리 대학 총장이 보냈다. 그 이름 뒤에는 법원공문도 첨부되어 있다. 이달부터 월급의 절반만 지급한다는 글귀가 악마의 손톱으로 흘렀다. 쌩쥐 기획실장의 법적 조처이다. 그는 아파트 경매와 함께 월급까지 차압시켜 버렸다. 아마 다음 달까지 경매중지를 시키지 못하면 처자식들은 길거리에 나앉아야 한다.

경매중지를 시키려면 당장 1천만원이라도 만들어서 법원에 수속해야 하지만 그런 거금이 어디에서 떨어진단 말인가? 그래서 아내는 무슨 독약 내놓듯, 그렇다고 안 내놓을 수도 없는 용가리 공문을 허리 밑으로 밀어 넣어주곤 도망갔다. 또 화장실 벽에 대고 울고 있을 게다. 울어봤자 친정 오빠들한테까지 이미 수 십 억을 빌려다가 성울대 밑구녕에 밀어 넣었다. 친정에또 갈 수도 없다.

매달 이자가 월급 전부를 쏟아부어도 모자라는 판에 용가리대학 월급이 절반만 나온다면 우선 사채이자가 항아리 배불뚝이로 늘어날 것이다. 고향 아닌 고향이 되어버린 진동고개 뻐꾸기가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 따라 매미 암자절 외딴집에서 점이의 해맑은 얼굴도 뛰어나온다 그리고 무당 에미의 살풀이 춤 긴 도포자락도 입원실 창밖으로 달아난다.

(다음편 9일자, 3-3. 경매딱지)

저작권자 © 국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