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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연재] 사기꾼들⑩

4. 친동생의 음모
4-1. 제2차 집단폭행

  • 신상성 소설가 webmaster@kukmini.com
  • 입력 2021.02.1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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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한달반만에 퇴원이다. 성삼몽 아내가 침대 밑에 쌓여 있던 헌옷 등을 꺼내며 준비하고 있었다. 뜬금없이 병실 밖이 소란스럽다 했더니 한 떼거리 낯선 청년들이 몰려들었다. 성삼몽 침대를 단박 뒤집어 엎었다. 그의 코와 양쪽 팔뚝에 아직 꽂혀 있던 링거병들이 박살났다. 그 난리에 링거병 주사바늘이 얼굴 등 여기저기 박혔다.

환자들이 몰려들어 뜯어말리자 그들 침대도 엎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들이닥쳤지만 그들은 복도 중앙의 간호사실로 몰려가 유리창을 링거 기둥으로 깨버렸다. 기획된 난동이다. 그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야, 성삼몽 이사장! 우리 큰형님 땅 내놔 엉, 왜 아버지 유산을 빼돌리는 거야 이 치사한 교수 사기꾼아!”

헐, 뜬금없이 무슨 땅을 내놓으라는 건가. 성삼몽은 얼굴에 함부로 찔린 주사바늘을 뽑으며 복도로 뛰쳐나왔다. 코끼리 같은 어느 떡대가 성총장의 모가지를 비틀었다. 순간적으로 성총장은 엎드리면서 코끼리를 유도 업어치기로 멀리 던졌다. 코 앞에 있던 간호원실이 난장판이 되었다. 그의 반격에 쇠파이프를 들고 몰리던 그들은 일순 멈칫 했다. 대충 십여명 조폭들이다.

“머야? 누가 보냈어?”

그 조폭들 뒤 복도 끝에는 의외로 성삼몽의 친동생이 남산 준상사가 담배를 꼬나물고 있었다. 성총장은 그때서야 머리를 끄덕였다. 지난주에 육시할 일당이 병문안 왔던 목적이 친동생 준상사와 연계된 것이다. 금년에는 연초부터 왜 이렇게 토정비결이 잘못 빠졌나, 성삼몽은 실소가 나왔다. 아내는 외교부 연락을 받고 급히 나갔다.

막내아들 녀석이 외교부 외교문서 버역일을 등 알바로 투잡하다가 과로로 쓰러진 것이다. 외교부 담당과장이 연락 왔단다. 아내는 간호원이 전달해준 병원으로 급히 나갔다. 준상사는 자기 친형인 성삼몽이 현재 최악의 궁지에 몰려있는 걸 알면서도 ‘유산분배’ 소송을 걸었다. 형의 목에 또 하나의 칼을 꽂는 것이다.

그 동생 준상사는 구파발 집은 원래 아버지의 유산이니까 누이동생 포함하여 셋으로 갈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엉뚱한 옆구리 지르기로 법원에 유산분배 소송을 걸어놓았다.

그리고 성삼몽 주변의 친구와 친척들을 찾아다니며 ‘형은 태생부터 악질이어서 아버지 유산을 혼자 독차지 하고 있다. 공평하게 분배해야 된다’며 자기가 미리 써 놓은 탄원서에 용가리 대학 성삼몽의 교수 친구와 친척들의 도장을 받으러 다녔다.

동시에 쌩쥐도 남산대의 동아리 친구들을 찾아다며 ‘성삼몽은 법인지분을 혼자 독식하고 교비를 횡령하는 등 악질이라’며 나팔을 불고다녔다. 기한유는 문인들을, 준상사는 친척들을, 쌩쥐는 남산대 등에 똑같은 각색으로 마이크를 읊어댄 것이다. 돈 앞에서는 형제도 친구도 동문도 없다.

재미있다. 그렇게 퉁나발을 불면서 탄원서에 도장을 받으려고 해도 삼몽을 평소에 잘 아는 동료 교수나, 친지와 친척들은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준상사가 나쁜 놈이라며 욕을 했다.

지축리, 구파발 집은 성삼몽이가 월급을 꼬깃꼬깃 모으고, 처갓집에서 돈을 빌려주어서 맨 땅에 건축한 것이란 걸 잘 아는 친척들은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다. 그러면 준상사는 어김없이 주먹을 날린다. 또 폭력에는 친구도 친척도 없다.

그래도 그게 잘 안 되자 성삼몽 형이 입원한 병원까지 찾아와 자기 꼬붕들을 풀어놓은 것이다. ‘폭력은 마약이다.’ 준상사는 남산공고 시절부터 주먹을 휘둘러 그 일대 충무로 일대 악동들에게도 우상이 되었다.

충무로 입구 명동 할머니 노점상들에게도 푼돈을 뜯어내었다. 그렇게 강탈한 자릿세로 고교생 준상사는 그 또래 사춘기들을 모아 밤새 도박에 빠진다. 어린 여고생들과도 혼숙한다. 잡놈잡년들 다 일지 클럽이다.

덕분에 성삼몽은 준상사가 제기한 민사법정에도 좇아 다녀야하는 등 더 바빠졌다. 유산소송에 대한 준비서면 등 성삼몽 직접 작성하여 제출해야 된다. 돈이 없어 변호사 선임도 못하기 때문이다.

쌩쥐와 멧돼지에게 얻어맞아 입원하기 전에도 교육부 대학정책실과 감사실, 경찰서와 검찰청 그리고 노동부에 가서는 교직원 임금을 며칠만 더 기다려 달라고 빌어야 했다.

그것도 용인에 있는 용가리 대학에서 강의가 끝나면 서울 서초동 법원, 수원 검찰청, 그리고 다시 안산 성운싸이버대학까지 사각형, 오각형으로 매일 나들명거리며 뛰어야 한다. 차라리 이렇게 입원이라도 해 있는 것이 잠시라도 편하긴 했다.

특히 성삼몽이가 구파발 지축리 초가집을 허물고 그 자리 맨 땅에 이층집을 올릴 때 건축은 아버지가 맡았다. 원래 아버지도 목수였다. 일제 강점기 아현동 서울공전 건축과를 나왔다. 용산 미8군 건축과에서 근무하다가 6.25를 만났다.

그러다가 군산에서 친형 큰아버지를 겨우 만나 마산으로 가게 된 것이다. 마산에서 큰 군납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나서 서울로 도망을 갔었다. 약수동 고개 목공소에서 대패가루를 마시며 겨우 목수 일로 풀칠을 할 때였다.

얼마 후, 아버지가 당시 깡촌이었던 지축리 집을 건축할 때는 외삼촌도 와서 직접 도와주었다. 그래서 외삼촌은 건축내력을 잘 안다. 성삼몽이가 땅을 담보로 건축자금을 빌리고 그의 마누라 친정 오빠들이 몇 억을 빌려주었다. 그 가정사정과 내막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준상사가 탄원서에 도장을 안 찍는다고 폭행을 하자 가장 중요한 증인인 외삼촌도 인감증명서까지 첨부해 주지 않으면 안었다.

‘언제나 마지막은 당신입니다. 언제나 당신을 만나야 완벽해지는 나.’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싯귀가 너무 아름다워 내 수첩에 써놓았다. ‘앞에서 날아오는 돌은 피할 수 있으나, 뒤에서 날아오는 돌멩이는 피할 수 없다. 운명이다.’

뻐꾹, 뻐버꾸욱… 어디선가 뻐꾸기 울음소리도 들렸다. 성삼몽의 동생은 점이 말고도 또 하나 남동생이 있었다. 준상사였다. 성도 달랐다. 그 놈도 성삼몽과 같이 어려서부터 진동에서 서울로 왔다. 그리고 행방불명이 되었다.

전혀 모르고 있다가 중학교 때 연락이 닿았다. 한때 옥수동 달동네에 살았다. 가출한 어머니 대신에 새엄마가 들어왔지만 그미도 가난에는 별 수 없었다. 베니다판으로 겨울 매성운 칼바람을 가리는 세멘트 벽돌 집에서 아버지가 밤이면 대패밥을 누렇게 뒤집어 쓰고 들어왔다.

일당 목수일로 건건이 벌어오는 연탄과 한줌 좁쌀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마산에서 밀가루 도매상으로 큰 사업을 하던 큰아버지를 도와주던 아버지가 별도로 군납사업을 했다. 마산 36예비사단과 합포 36군병원 병참사업이었다.

나중에는 진해 해군기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고철사업까지 확대되었다. 전국의 고철 고물상을 돌면서 트럭으로 고처를 모아 서울 영등포 대한중기 열차회사에 넘기는 것이다. 당시 박정희 장군이 부산 제1군수기지 사령관일 때 그 부대와도 거래할 정도로 컸다.

그러나 큰아버지가 간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시자 자금 회전이 중단되어 버렸다. 거기에다 5.16 군사혁명으로 쫄딱 망했다. 군납이란 게 사단장들과의 거래인데 하루아침에 사단장들이 물갈이 되자 거래처도 뒤집어졌다.

결국 회사도 부도가나고 아버지는 야밤에 서울로 도주해 버린 갓이다. 한때 잘 나가던 아버지는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사업자체가 전국을 떠도는 유랑사업이어서 이기도 했지만 늘 위험이 따랐다. 얼마 안 되는 식구들이 사실상 다 이산가족이 된 셈이다.

나중에 겨우 연락이 닿아 식구들이 다시 모여 옥수동 달동네에 사글세를 얻어 모처럼 한 이불을 덮고 살 수가 있었다. 아버지는 약수동 목공소에서 막노동을 했다. 성삼몽은 한강 다리 밑 모래사장에서 트럭에 모래를 퍼올리는 알바로 노동으로 생활비를 보탰다.

등록금은 원래 입학 때 전교 톱 장학생이었으나 대학 2학년 6.3 사태 때 데모 주동자로 찍히는 바람에 장학생 대우도 취소되었다. 결국 아버지는 중노동에 못 이겨 새벽이면 당신이 자고 난 요 위에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새 엄마는 손사래를 치며 빨리 꺼지라고 소리쳤다.

독촉에 못 이겨 결국 간암 말기인 아버지를 리어카에 모시고 옥수동에서 구파발까지 끌고 왔다. 앞에서 성삼몽이 끌고 뒤에서 준상사 동생이 밀고 약40Km가 넘는 먼 거리를 폭우 속을 뚫고 구파발까지 왔다. 그렇게 구파발 초가삼간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차암, 그때 약수동 달동네 숲에도 뻐꾸기가 울었다. 그 애절한 울음소리를 리어카에 같이 담아왔다. 그렇게 병든 아버지를 성삼몽 모셔왔는데 무슨 아버지 재산이 있으며 유산이 있겠는가. 그것은 친동생 자신이 리어카를 뒤에서 밀며 같이 끌고 왔기 때문에 친히 더 잘 안다. 그런데도 강짜로 돈 내놓으라고 형을 고발한 것이다. 고단하다.

(다음편 16일자, 4-2. 멧돼지의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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