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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책을 만들고

  • 장석영 스폐셜 칼럼 webmaster@kukmini.com
  • 입력 2021.04.15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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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영 박사
장석영 박사

서울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를 찾아가면 입구 벽면에 이런 구절의 짧은 격언 같은 문장이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문장의 내용은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다. 독서를 권장하려는 아주 좋은 글이 아닌가 한다. 책을 읽어야 인간다운 인간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책의 날’이 정해져 있다. 매년 4월 23일이 그 날이다. 유네스코가 1995년에 제정했다. 유네스코는 교육과 과학 그리고 문화의 보급과 국제교류 증진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제기구 이다. 그래서 책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이 날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인류지식이 쌓여있는 책은 언제 처음 만들어졌고, 어떻게 발전했을까?

 책은 한마디로 ‘인류의 생각이나 지식을 그림이나 문자를 기록해 남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구석기 시대의 동굴벽화도 책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보는 형태의 책은 문자가 발명된 이후에 등장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는 선(線)이 쐐기 모양으로 된 문자로 기록을 남겼다. 그 기록문은 주로 당시 행정적인 내용을 담은 문서나 아버지가 말을 듣지 않는 아이를 훈육(訓育)하며 남긴 일기 등이다.

 이집트 문명에서는 책을 만드는 종이를 나일 강 유역에 있는 식물을 사용했다. 그 때는 풀줄기의 섬유를 가로세로로 엮어서 종이를 만들었는데, 이 식물 이름이 ‘파피루스 (papyrus)’라고 한다. 그래서 그 때부터 그 이름 그대로 종이도 파피루스라고 불렀다. 그래서 파피루스는 종이를 뜻하는 영어 단어 ‘페이퍼(paper)’의 어원(語源)이 되었다. 중세(中世)로 들어와서 유럽에서는 양피지를 종이로 사용했다. 양피지는 소나 양 그리고 염소 등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양피지는 파피루스에 비하면 튼튼하고 오랜 기간 보존이 가능했다. 그 대신 비싸고 무겁다는 단점이 있었다. 양피지가 발명된 이후 우리가 지금 보는 형태의 책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네모로 만든 양피지 위에 글을 쓰고 나서 양피지 왼쪽 끝에 구멍을 뚫어 하나씩 모아 끈으로 묶은 다음에 표지를 만들어 입혔다고 한다.

 한편 동아시아 지방에서는 대나무와 나무에 글을 썼다. 이 나무 조각을 죽간(竹簡), 목독(木牘)이라고 부른다. 나뭇조각을 가죽 끈으로 묶어 책으로 만들었다. ‘책(冊)‘이라는 한자는 바로 이 나뭇조각을  묶은 모양에서 유래했다. 공자가 ’주역‘이라는 책을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데, 이 책은 나뭇조각을 엮은 책이었다.

 약 2,000년 전 중국의 채륜 이라는 사람이 종이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전해진다. 그 이전에도 종이는 있었지만 질(質)이 좋지 않았다. 채륜의 종이 만드는 기술은 이슬람을 거쳐 유럽 세계로 전파됐다. 이후 15세기에 들어와서 로마 제국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1450년 쯤 활자 인쇄기를 개발하면서 출판시대가 열렸다. 그 전까지 책은 값비싼 사치품이었는데 출판기술의 개발로 대중들에게 책과 지식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낙랑을 통해 처음 제지기술이 들어와 남쪽의 삼한시대를 거쳐 삼국시대에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우리나라의 제지기술은 삼지닥나무, 안피나무, 닥나무, 뽕나무 등의 나무껍질을 떠서 종이를 만드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지는 외국의 양지보다 훨씬 보존성이 좋다. 특히 종이의 발명국인 중국에서도 우리나라의 종이를 제일로 여겼다. 그 중에서도 닥종이는 희고 두텁고 질겨서 오래 견딜 수 있음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우리나라의 우수한 제지술은 우리나라의 고승 담징에 의해서 610년에 일본에 전해졌다.

 종이의 발명과 목판인쇄술, 금속인쇄술, 산업혁명을 통한 인쇄기계의 발전은 정보의 대중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인쇄를 기반으로 한 정보매체의 발달은 전(全) 세계적인 사회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인터넷과 스마트 폰의 대중적인 보급과 함께 지식기반사회로 전환 되면서 종이로 대표되는 인쇄시장의 흐름은 큰 변화에 직면했다. 최근 10년간 TV시청률이 40% 이상, 종이신문구독률이 50%이상 줄었다고 한다. 그만큼 기존 인쇄매체 관련 시장이 크게 위협을 받고 있다. 특히 킨들, 아이패드, 갤럭시 탭 등으로 대표되는 태블릿 pc의 등장 때문에 정보의 취득이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유비쿼터스시대로 접어들면서 종이매체에 대한 위협이 커졌다.

 

 이제 세계적으로 전통적인 인쇄를 기반으로 한 정보매체의 판매부수 감소는 멈출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얄궂게도 이와는 반대로 종이의 소비량은 매년 꾸준한 증가추세에 있다. 정보를 전달하는 책과 잡지, 신문 등의 소비는 줄었지만 인터넷과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인쇄가 개인 각자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수단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에도 인쇄술은 위기와 함께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존하는 최고의 목판본과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본을 만든 나라로 오늘날에도 세계 10대 인쇄대국으로서 선진국의 대열에 서 있다. 지식정보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인쇄 산업은 다양한 산업과 결합을 통해 우리 생활 주변의 모든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인쇄의 전자분야 활용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우리나라 주력 산업 중에 하나인 반도체 메모리는 세계적이다.

 인쇄는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산업전반에 걸쳐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이제 인쇄는 단순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산업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는 생활 구서구석에서 그 역할을 다 하고 있다. 어떻든 책은 세상을 바꾼 물건 가운데 하나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책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사람은 책을 만들어 왔지만 책은 역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왔다는 것인데 이야 말로 진리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을 가까이해야할 이유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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