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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설 풍경

  • 장석영 스페셜 칼럼 webmaster@kukmini.com
  • 입력 2021.02.06 04:50
  • 수정 2021.03.23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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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영 박사
장석영 박사

“설날 가족이 만나는데 웬 과태료야” 정부가 올 설에 직계가족이라도 거주지가 다르면 5인 이상 모일 경우 10만원의 과태료를 물리겠다는 지침을 내리자 여기저기서 불만이 쏟아지고 있는 모양이다. 작년 추석 때는 ‘귀성을 자제해 달라’는 정도였으나 이번 설에는 강제로 명절 모임을 막기로 했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우리 집에서도 아이들이 같은 불만을 토로했다.

 엊그제 저녁이었다. 며느리가 손녀와 함께 학원 수업을 마치고 우리 집에서 머물고 있는 손자를 데리러 왔을 때였다. 며느리가 “이번 설에는 거주지가 다르면 5인 가족이 모일 수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 걱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처럼 보통 우리 식구들은 모이면 5인 이상인데 설날이라고 못 모인다고 하면 그게 잘 못이 아니냐.”고 했다.      

 며느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자가 나섰다. “명절에 가족이 모이는 것 까지 정부가 규제한다는 것은 과도한 조치가 아니냐.” 고 목청을 높인다. 이번엔 손녀가 대화에 끼어든다. 식당이나 회사에서 남들 하고는 잘도 모이면서 왜 막는 건지 모르겠단다. 그 때 할머니가 나서서 “아무래도 자식들 중에 코로나에 걸린 줄 모르고 부모님을 뵈러 갔다가 부모님이 감염이라도 되면 큰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랬을 거다.”라면서 정부 대변인 역할을 해주었다.

 내가 말했다. “우리 집에서도 벌써 갑론을박이 시작됐구나. 내 생각에도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먼저 번처럼 ‘귀성을 자제해 달라’고 하면 되지 과태료까지 물리겠다고 하는 것은 좀 과한 기분이 든다. 신문에 보니까 어떤 이는 과태료를 감수하고 고향의 부모님을 뵈러 가겠다고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그래도 괜히 모였다가 가족들 건강을 해치면 안 되겠기에 영상 통화만 하겠다는 사람들도 있더라. 5인 이상 모이지 말라고 하는 것을 귀성을 피하는 핑계로 삼는 경우도 있다고도 하더라, 그나저나 소상공인들은 얼마나 힘들겠니. 명절 대목을 못 보니 말이다 ”

 며느리가 “그럼 아이들은 집에 있으라 하고 저희 내외만 그날 아침에 세배 드리고 갈까요?”라고 묻는다. 그러자 손자가 대뜸 제 엄마에게 “그건 안 된다”고 하면서 “ 우리도 그냥 과태료 물고 와요”하고 강하게 말한다. 이에 손녀가 그건 안 된다면서 묘안이 있다고 했다. “ 정부가 집집마다 단속할 수 없겠지만, 파파라치가 신고한다고 하니 괜히 과태료를 물을 필요 없어요. 아빠 엄마가 먼저 왔다 가고 윤준이와 내가 와서 세배 드리면 되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내가 교통정리를 했다. “어떻게 하니. 코로나 때문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설 풍경을 봐야하는구나. 설날 아들네는 손녀의 제안대로 아들과 며느리가 먼저 왔다 가고, 차로 10분 거리이니 손녀와 손자는 내가 가서 데려와 떡국을 같이 들기로 하자. 그리고 딸네는 사위가 공무원이니 오지 말라고 미리 연락하겠다.” 사위는 공무원 신분이라 오고 가는 길에 자칫 코로나에 걸리면 인사 상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해서 지난 추석에도 오지 못하도록 했었다.

 손자는 약간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내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설에 대한 유래를 다시 한 번 들려달라고 요청한다. “ 아니 전에도 알려주었는데 또 잊어버렸느냐” “매번 들어도 새로워요. 누나도 있으니까 한 번 더 말씀해 주세요.” “ 그래  알았다. 설이 우리민족의 최대 고유 명절이라는 것은 알고 있겠지?” “ 네 . 알아요.” “ 그래서 그날은 어른께 세배 드리면서 ‘만수무강(萬壽無疆)하시라’고 말씀 드리고, 어른은 자녀들에게 ‘건강하게 열심히 살라’는 덕담을 해 주신다는 것도 알고?” “ 네, 알아요”

 “ 지난번에 할아버지가 설은 시간적으로 한 해가 시작되는 새해 새달의 첫날인데 한 해의 첫 명절이라고 하신 게 기억나요. ” “ 그랬지. 그리고는?” “ 한 해의 시작인 정월 초하루는 천지가 개벽(開闢)될 때의 그 순간에 비유된다고도 하셨고요.” “ 그래, 잘 기억하고 있구나. 이날 우리 조상님들께서는 농사를 짓고 살았기에 풍년이 들고 여름에는 홍수가 나지 않게 해달라고 하늘에 기원하고 조상님들께도 차례를 지냈단다. 차례를 지내면 성묘를 갔다. 바다를 끼고 있는 마을에서는 풍어제라고 해서 고기를 많이 잡고 사고가 없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 지금도 그런 풍습이 많이 남아있다고 들었다.”

 

 손자는 설음식을 세찬(歲饌)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세찬의 대표적인 음식이 뭔지 아니?” “ 떡국인가요?” “ 그렇다. 떡국을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먹는다고 했다.” ” 떡국을 먹지 않으면  어떻게 돼요?“  ” 나이를 먹을 수 없겠지“ ” 그럴 리가요“ 녀석은 할아버지의 능청에 한 바탕 웃는다.  ” 우리 선조들은 설날 새벽에 밖에 나가 까치소리를 들으면 길할 조짐이고, 까마귀 소리를 들으면 불길하다고 생각했단다.“

 “그뿐이 아니다. 설날 낮에 ‘야광귀’라는 귀신이 와서 신발을 신어보고 맞으면 그냥 신고 가버리는데 신발을 그렇게 잃어버린 사람은 그 해에 재수가 없다고 했지, 그래서 신발을 감추거나 엎어놓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 여자들은 널도 뛰고 남자들은 연도 날렸다면서요?” “ 그랬지. 여자들이 널을 뛰면 그 해에는 발에 무좀 같은 것이 나지 않는다고 믿었던 것이다, 연날리기는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 때까지 계속 했다.”

 “할아버지가 설날 전 날인 그믐날 밤에는 일찍 자면 눈썹이 센다고 해서 밤을 새우는 풍습도 있었다고 하셨지요?” “ 그게 다 속설인데 즐겁게 놀고 새해 첫날이 되기를 고대한다는 마음을 가지라는 뜻에서 그랬을 거라고 본다. 설날 입는 옷을 ‘설빔’이라고 하는 것은 알지?””네, 알아요. “ ”어린이들은 설날에 색깔이 있는 옷을 입는데 특히 여자 어린이는 색동저고리를 입는다. 또 요즘에는 떡집에 가서 가래떡을 사오지만, 예전엔 집에서 직접 만들었다. 젊은이들은 떡 매를 치면서 힘자랑도 했단다. “

 “세찬에는 어떤 게 있는 줄 아니?” “ 떡국 아닌가요?” “아니다. 가래떡을 넣어 끓인 떡국 외에 시루떡도 있고 인절미, 빈대떡, 강정, 식혜, 수정과 등도 있지. 세주(歲酒) 는 설날 차례지낼 때 사용하는 술인데 맑은 청주를 쓰고, 차례를 지내고 나면 그 술은 가족들이 함께 마신다. 대보름엔 오곡밥과 묵은 나물이 대표적인 명절식이라는 것은 알고 있겠지?” “ 네 알아요. ” “ 그럼 오곡은 무엇 무엇을 말하는지 아느냐?” “ 쌀, 콩... 잘 모르겠어요.” “ 오곡은 찹쌀, 수수 ,조, 팥, 콩을 말한다.”

 “설날 인사법은 알고 있느냐?” “ 다시 가르쳐 주세요.” “ 그래, 설날 인사말은 <과세 안녕히 하셨습니까?> 혹은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라고 하는 게 전통적인 인사말이다. 그런데 요즘 너희들이 잘 쓰는 인사말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하는 말은 전통적인 덕담이 아니고 새로 생긴 현대판 덕담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 할아버지, 이번 설날은 춥다고 했어요.” “그러니? 날씨야 그렇다하지만 고향도 맘대로 못 가는 상황이 더 춥지 않겠니?”  

“ 여하튼 설날은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성묘도 하는데, 이 세시풍속(歲時風俗)은 오늘 날에도 이어져 오고 있어 다행이다. 그러나 민속놀이는 점점 퇴색되거나 단절되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이번처럼 코로나 때문에 오랜만에 가족이 만나는 즐거움도 잃어야 한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구나. 하지만 형식도 중요하지만 조상을 잊지 않고 어른들을 섬기는 정신이 더 중요하지 않겠니?” “ 네, 잘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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