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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접종 후진국‘ 오명이 국민 탓인가?

  • 장석영 스페셜 칼럼 webmaster@kukmini.com
  • 입력 2021.04.10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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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영 박사
장석영 박사

엊그제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코로나수칙 위반업소는 무관용 원칙으로 엄벌하겠다.“는 담화를 발표한 다음 날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도 ”집중단속에 들어간다.“고 했다. 어제는 정세균 국무총리가 ’백신. 치료제 상황 점검 회의‘에서 ”4차 대유행의 갈림길에 서 있다“면서도 ”우리나라 방역은 전반적으로 성공적인데 백신 접종이 좀 늦었다고 K-방역을 깎아내려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 확진환자 수가 연일 600명대를 상회하는데 ’백신접종 후진국‘소리까지 들으니 정부가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국민 입장에서 보면 백신을 확보하지 못해 제 때에 접종도 못하는 정부가 국민 탓만 해서 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방역수칙은 지켜야 한다. 그런데 백신도 못 구한 정부가 반성 한마디 없이 수칙을 안 지키면 무관용으로 엄벌한다는 등 엄포만 놓아서 되겠는가.

 질병관리청은 최근 “현재까지 등록된 접종대상자 비율에 맞게 백신공급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백신 1차 접종자는 96만명, 2차 접종까지 완료한 국민은 2만 7,000명으로 ‘11월 집단면역’을 위한 계획은 달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 정부와 산업계는 조심스럽지만 선진국처럼 그 때가 되면 ‘백신여권’ 도입과 국가. 도시 간 트래블 버블(비 격리 여행협약)체결을 논의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도 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될까?

 물론 코로나19가 종식 된다면야 경제회복과 일상생활도 정상화 되는 것은 틀림없다. 그게 집단면역이 형성되는 지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백신접종 시작이 선진국들보다 훨씬 늦은데다 백신 확보도 충분치 못해서 당초 장담한대로 올해 11월 말 집단면역 형성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런 불확실성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백신 수급이 어려워지고 있어 더욱 커지고 있다.

  선진국들은 백신마다 효과와 안전성 그리고 유통조건이 제각각인 걸 감안해 일찍이 선(先)구매 방식으로 여러 종류의 백신을 인구의 몇 배씩 확보해 놨다. 백신을 충분히 확보한 미국. 영국. 주요 유럽 국가들과 일부 중동 부유국(富裕國)들은 6월 이후 집단면역을 달성할 것이 예상된다. 이들 나라에선 벌써부터 서서히 정상생활 복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누적 접종률 116%를 넘은 이스라엘은 며칠 전부터 군인들에게 마스크 벗기를 허용했다는 보도다.

 미국도 인구의 약 31%인 1억 100만여 명이 접종을 완료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이달 초 보도했다. 우리는 어제까지 접종률이 1.85%에 불과해 세계 98위로 ‘집단면역 늑장 형성국’이 될 판이다. 코로나 초기 감염자와 사망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어려움을 겪던 나라들이 미국과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이었음을 상기한다면, 이들 국가의 과학기술면의 우위와 국가의 백신정책의 우수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2분기부터 백신도입을 늘려 올해 상반기에 1,200만 명에게 백신을 접종하겠다고 했다.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과 화이자 백신이 6월까지 꾸준히 도입된다고 했다. 또 국내 라이선스 생산과 공급이 가능한 노바백스 백신 2,000만 명분 공급계획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백신 도입은 그 계획 자체가 실현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인도 정부가 3월 중순 이후 백신 수출 제한에 나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수출이 잠정 중단됐다. 노바백스 백신도 미국 식품의약국(FDA) 이나 영국의 긴급사용승인이 5월이나 되어야 가능해진다. 미국 노바백스사가 코로나19 백신 원료물질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유럽연합(EU)과의 백신 공급 계약체결을 연기해 백신생산이 불확실해졌다. 더구나 얀센, 모더나 백신은 2분기에 들어서도 구체적인 생산물량이 확정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지난 2월 화이자 측과 300만 명분의 코로나 백신 추가 물량을 계약할 당시 “백신을 더 많이 사면 더 많은 물량을 조기에 공급할 수 있다”는 화이자 측의 제안을 거부했다는 보도다. 코로나 백신의 불확실성을 감안한다면 물량을 더 구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실책이다. 정부가 처음부터 백신구입에 소극적이었던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화이자의 좋은 조건마저 거절한 것은 그 이유가 무언지 반드시 밝혀져야 할 것이다.

 경제전문가들은 “백신도입이 늦어 집단면역 형성이 늦어진다면 경제적 손실이 엄청나다”고 말한다. 국제통화기금은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을 3.6%로 전망했지만, 이는 올 11월에 집단면역이 형성된다는 조건이어서 그렇지 못할 경우의 성장률은 1.5~ 1.8%에 그칠 것이라고 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도 IMF의 전망치와 비슷했다. 특히 집단면역 형성 실패로 하루 확진환자가 1.200명 수준이 된다면 올해 국내 성장률은 0%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는 처음부터 백신을 확보해 놓지 못하고는 국민들에게 “남들이 먼저 맞는 것을 보고 접종하는 것이 좋다”라고 하는 터무니없는 자기 합리화를 해왔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백신 부족을 감추려고 며칠이면 다 맞힐 양(量)을 갖고 매일 찔끔찔끔 맞히는 ‘보여주기 쇼’를 이어가고 있다. 집단면역을 확보하려면 백신을 먼저 맞은 사람들의 면역 효과가 사라지기 전에 나머지 사람들이 접종을 끝내야 한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11월 집단면역은 거짓말이 될 공산이 크다.

 필자와 같은 고령자에게는 3월 말 경 “4월초부터 화이자 배신을 맞게 한다”고 거리에 플레카드를 걸어놓고 통반장을 통해 동의서까지 받아가고는 막상 4월이 되자 “5월 중순 지나야 맞게 된다”고 알려왔다. 이제 정부는 좀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국민을 더 이상 속여서는 안 된다. 백신구입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리고 양해를 구하는 게 옳지 “수칙을 안 지키면 엄벌한다”며 국민을 겁박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방역정치’를 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만 받는다.

 정부가 ‘거리두기 2 주 더 연장’을 반복해온 것이 벌써 몇 달째인가. 국민들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정부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난국을 돌파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렇다면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방법은 있다. 백신의 부족분을 빠른 시일에 확보하여 처음의 계획대로 접종을 하는 것이다. 정부는 민간기업과 협조를 통해 백신 구입에 뛰어야 한다. 예컨대 글로벌 백신 공급 회사들과 백신공동개발 또는 생산을 추진하는 방법도 있다.

 이와 함께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도록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인 지원책을 강구하는 것도 좋음 방법이다. 우리나라 바이오. 의약산업 생산 인프라와 임상연구는 세계적으로 봐서도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코로나 백신 주사기도 우리의 중소기업이 삼성의 지원으로 만들었지 않은가. 과거 신종 플루가 유행할 때 타미플루 치료제를 만들어 냈듯이 코로나19 치료제도 국내서 개발 할 수 있다고 본다. 이 모두가 정부가 해내야 할 과제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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