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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詩窓)에 비친 세상

  • 장석영 스페셜 칼럼 webmaster@kukmini.com
  • 입력 2021.04.12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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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영 박사
장석영 박사

한동안 뒷산을 진분홍빛으로 물들이던 진달래꽃이 어느새 이별을 고(告)하기 시작한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꽃이 지는 동안 잎들이 서둘러 삐죽삐죽 나오고 있다. 진달래꽃은 대부분 가지 끝에 모여서 핀다. 줄기 윗부분에서 가지가 여럿으로 갈라지고, 그 끝에 몇 개씩 모여서 꽃을 피운다. 잎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꽃이 위쪽에 모여 있다 보니 산이 온통 진분홍색으로 물드는 모양새를 만든다.

 진달래는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바위 틈새를 비집고 서 있는 모습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읽을 수 있다. 꺾여도 잘려나가도 억세게 피어난다. 산이 있으면 안 피는 곳이 거의 없다. 그래서 영락없이 ‘한국의 꽃’이다.

 진달래꽃 하면 많은 분들이 먼저 떠올리는 시(詩)가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일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시가 우리나라 서정시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어서일 게다. 그런데 내가 이 시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그 표현이 아이러니(irony)하고 코믹해서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전문

 

 시의 화자(話者)는 김소월이 아니고 한 여인이며, 이 여인은 님과의 이별을 근심한다. 자신이 역겨워서, 싫어서, 구역질나서 떠난다면 어떻게 하나? 만일 자신이 역겨워서 님이 떠난다면 화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다’고 말한다. 말이 되는가?

 이런 경우에 님에 대한 대응은 님을 붙잡고 떠나지 말라고 울며불며 하소연 하든가. 칼을 들고서라도 떠나지 못하게 위협을 하거나, 아니면 이별을 체념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역겹다고? 그래 나도 네가 역겨웠다”며 가는 이에게 소금을 뿌리거나 하는 등 여러 가지 경우가 있을 법하다.

 그런데 이 시의 화자는  어떤가? 님이 떠난다면, 그것도 역겨워서 떠난다면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겠다’고 한다. 그것도 영변 약산에 핀 진달래꽃을 한 아름 따다 ‘가시는 길에 뿌리겠다’고 한다. 소금이라도 뿌리지 않고 보내 주는 것은 고맙지만, 어찌 꽃까지 뿌려준단 말인가? 님이 떠나는 게 그렇게도 기쁘단 말인가? 또 이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라니 어떻게 가는 게 사뿐히 즈려밟고 가는 것인가?    

 

 진달래꽃을 뿌리는 이 여인의 행위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꽃을 뿌리는 행위는 무덤을 제외하면 대체로 기쁨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 시의 화자는 이별이 기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별의 시간에 꽃을 뿌리는 행위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여인의 심리적 이중성, 즉 내숭떨기가 아닌가? 그러므로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다’는 말 역시 겉으로는 눈물을 흘리지 않겠지만, 속으로는 눈물을 흘린다는 의미다.

 이런 태도는 이른바 언어적 아이러니에 속한다. 말의 표현과 심층이 대립하는데, 그러나 동시에 인식하는 태도다. 이는 삶 역시도 행복한 것만도 아니고, 고통스럽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의미다. 자연에서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삶도 같다는 뜻이다. 따라서 어느 한 면만을 강조하는 이른바 감상적인 태도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시에 나오는 여인은 떠나는 님을 보내면서 동시에 잡고 싶은, 또는 보내야 하는 마음과 잡고 싶은 마음의 갈등을 겪고, 이런 갈등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맥(脈)이 통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좋은 시는 독자에게 언제나 새로운 감동을 불러일으키면서 시대를 초월하여 길이 읽힌다. 이처럼 좋은 시 가운데 하나가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아닌가 한다. 이유는 이 시가 지닌 독특한 개성과 보편성, 항구성 때문이라고 본다.

 영변 약산엔 지금도 진달래가 피어있을까? 궁금하다. 풍문에 따르면 진달래꽃의 상징 지역인 그곳엔 북한의 핵 시설이 들어선 이후 주변이 거의 오염돼 풀도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영변 약산에는 진달래가 피지 않는다.’는 소설이 등장했나보다. 그 많던 진달래가 사라지지 않고 그냥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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