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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이야기

  • 최태호 스페셜 칼럼 webmaster@kukmini.com
  • 입력 2021.04.19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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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 중부대 한국어 교수
최태호 중부대 한국어 교수

한서(漢書) <식화지(食貨志)>에 의하면 “술은 모든 약 중에서 가장 좋은 것(酒百藥之長)”이다. 그런가 하면 이옥봉의 한시에는 “(그리움은) 술로도 고칠 수 없고 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것(酒不能療藥不治)”이라 했다. 사랑에 빠진 여인의 그리움은 고칠 수 없으나 보통의 정신적 고뇌는 술로 고칠 수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온갖 약 중에서 으뜸’이라고 한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 조상은 예로부터 술을 즐겨 왔고, 술을 엄청나게 사랑한 민족이다. 그래서 국중대회에는 항상 술을 마시며 밤새도록 놀았다(國中大會 晝夜飮酒, 飮酒歌舞 晝夜無休). 그러니까 세계 술시장에서 성공하려면 한국에서 시음회에서 호평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태백도 그의 시에서 “석 잔 술은 대도와 통하고, 말 술은 자연과 하나가 된다(三盃通大道 斗酒合自然).”고 했다. 하기야 말 술을 마시고 자연과 하나가 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길을 가다 보면 아스팔트가 벌떡 일어나서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이지.

필자와 같은 사람을 일컬을 때는 ‘과맥전대취(過麥田大醉 : 밀밭을 지나가도 크게 취하는 사람)’라고 한다. 체질적으로 술을 마시면 온몸에 얼룩이 생기고 가렵고 졸려 앉아있을 수도 없을 정도다. 그래서 술을 마시는 자리에 가면 항상 뒷정리 담당이었다. 대학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친구들 다 집에 간 다음에 집에 갔고, 지금도 술친구들은 대리운전 부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술좌석에 필자와 동반하는 것을 좋아한다.

술은 과거에는 ‘수블’ 혹은 ‘술’이라고 했다. 일본어에서 술을 뜻하는 ‘sasa’나 ‘sake’가 우리말 ‘술’의 어근(sas : 숟)이 넘어가서 된 것이다.(서정범, <새국어어원사전>) ‘수블’의 ‘블’도 ‘술’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수+블(水+火)=수블=> 술’로 된 것으로 술을 마시면 몸에서 화기가 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설은 그리 근거가 있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미흡하다. 계림유사라는 아주 오래된 책(송나라 사람이 신라의 말을 중국식으로 표기한 책)에 의하면 ‘술 = 蘇孛’이라고 해서 신라 때부터 ‘술’이라고 써 왔음을 알 수 있다. 조선관역어에서도 ‘數本二(수블의 중국식 발음 표기)’라고 했으니(서정범 <위의 책>) 수블이라고 했던 것이 ‘수울’로 변했다가 ‘술’로 정착한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형식은 ‘셔블=>서블=>서울’로 변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다만 컴퓨터로 순경음비읍( ᇦ)을 표기하는 것이 어려워 ‘블’로 표기했을 뿐이다.

필자와는 반대로 술을 엄청나게 많이 마시는 사람을 ‘부줏술’이라고 한다. 집안 내력이 있어 아무리 부어 마셔도 취하지 않는 사람을 이를 때 쓰는 말이다. ‘고주망태’라는 말은 “술을 많이 마시어 정신을 차릴 수 없이 취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부줏술과는 다르다.(참고로 ‘부좃술’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부조로 보내는 술’을 말한다.) 이는 ‘고조’와 ‘망태’의 합성어이다. 흔히 고주망태하고 하니까 고주(高酒)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고조’란 ‘술을 거르거나 짜는 틀’을 말하고, ‘망태’는 ‘망태기의 준말’로 가는 새끼나 노로 엮어서 만든 그릇을 이르는 말이다. 술 단지 위에 술을 짜기 위해 올려놓은 망태이기 때문에 언제나 술에 절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술에 절어 있는 사람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 되었다. 보통 50년 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집집마다 마루 밑에 술단지가 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아니면 툇마루에 누룩과 함께 물을 버무려서 술을 담그는 단지가 있었던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 속에 대나무로 만든 망태를 깊이 밀어 넣고 그 속에 술이 고이면 떠 마시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그것이 고주망태라고 생각하면 비슷하다. 증조할머니께서 먹을 것(간식)이 없으니 가끔 ‘지게미(모주를 짜내고 남은 찌꺼기, 흔히 술찌게미라고 했다.)’에 설탕을 타서 주셨던 기억이 있다. 설탕 덕분에 맛있게 먹기는 했지만 나중에는 술기운으로 흐느적거리다 나뭇간에서 잠들곤 했다. 닭들도 그것을 먹으면 비틀거리는 모습이 꼭 술 취한 사람과 같았다.

술은 적당히 먹으면 약이지만 술잔 속에 빠져 죽은 사람이 태평양에 빠져 죽은 사람보다 많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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