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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의 숨은 이야기를 아시나요?

  • 장석영 스페셜 칼럼 webmaster@kukmini.com
  • 입력 2021.04.19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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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영 박사
장석영 박사

얼마 전에 마을 뒷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면서 숲 길 안쪽 햇볕이 잘 드는 곳에 피어난 제비꽃 두어 송이를 보았다. 얼마나 반가운지 걸음을 멈추고 쪼그리고 앉아 꽃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뒤에서 하산하던 한 분이 ‘무얼 그리 열심히 보고 계시냐?“고 묻기에 나도 모르게 ”여기 제비꽃이 피었어요.“하고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그 분도 내가 가리키는 곳을 보더니 ”봄의 전령이라는 제비꽃이 피었으니 완연한 봄이 됐군요.“ 하고 신기한 듯 한참을 구경하고 내려갔다.

 그날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엊그제는 아침 늦게 외출을 하면서 무심코 아파트 화단을 바라보다가 제비꽃이 무리지어 피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제비꽃은 원래 야산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꽃인데 도심 아파트 화단에서도 군락(群落)이루다니 신기하기만 했다. 마침 경비 아저씨가 다가오기에 어떻게 화단에 이렇게 많은 제비꽃이 피게 됐느냐고 물어봤다. 그 분 말씀이 몇 년 전에 관리실에서 제비꽃과 백문동 등을 화원에서 구입해 화단에 심었다고 했다.

 전에 보면 제비꽃은 양지 바른 무덤가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다. 한식을 앞두고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 산소를 찾았을 때 만나는 꽃이 주로 제비꽃과 할미꽃이었다. 특이한 것은 할미꽃은 기껏해야 한 두 개인데 제비꽃은 수 없이 많아 일일이 손으로 뽑아내야 했다. 지난해 추석 때 가수 나훈아씨가 새로 지어 불렀다는 ‘테스형’이란  노래에서 보면 “울 아버지 산소에 제비꽃이 피었다”는 가사가 나온다. 그 때 그 노래를 들으면서 내년에도 부모님의 산소에는 제비꽃이 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제비꽃에는 이름도 많다. 꽃의 모양이 하늘을 나는 제비 모양과 같다하여 제비꽃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기도 하고, 제비가 오는 봄에 핀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말도 있다.  또 한편으로는 땅에 붙어 낮은 키로 자란다고 ‘앉은뱅이 꽃’이라고도 하고 오랑캐 머리를 닮은 꿀주머니를 가져서 ’오랑캐꽃‘이라고도 한다. 그뿐이 아니다. 작고 귀엽다고 하여 ’병아리 꽃‘, 반지를 만들어 놓은 것 같다고 ’반지꽃‘이라고도 한다. 이름만 들어도 어떤 꽃인지 금방 머리에 그려진다.  

 종류도 워낙 많아 꽃의 색깔도 보통은 짙은 붉은 빛을 띤 자주색 꽃이 흔하지만, 하얀색도 있고 노란색도 있다. 물론 꽃의 모양도 조금씩 다르다. 햇살이 잘 드는 야산에서 주로 만나던 이 꽃은 요즘 들어 도심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다. 그래서 길거리 콘크리트길의 갈라진 틈이나 돌담 근처에서도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제비꽃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강인하고 억세다는 것을 느낀다. 화단은 생육조건이 좋지만 어떻게 척박한 돌 틈을 비집고 살 수 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요즘 같은 찬 기운이 남아있는 봄바람 속에 짧게 흔들리는 제비꽃을 만나면 반가움과 함께 애처로운 생각이 든다. 마치 꿈 많은 젊은이가 힘든 세상살이에 느끼는 절망감을 보는 듯해서 그렇다. 조동진이라는 이가 지었다는 ‘제비꽃’이란 노래를 들으면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에서 떠나간 소녀를 떠올리게 한다. “ 내가 처음 만났을 때 /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고 싶어....”노래 가사가 슬프기만 하다.

 제비꽃의 씨앗에는 엘라이오솜(elaiosome)이란 물질이 붙어 있다고 한다. 이 물질은 지방산, 아미노산, 포도당으로 만들어진 화학물질인데 개미들이 특히 좋아한다. 개미들은 이 물질이 묻은 씨앗을 자기 집으로 물고 간다. 하지만 개미가 필요한 것은 엘라이오솜이지 씨앗이 아니기 때문에 땅 속 자기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씨앗은 집밖에다 버린다. 그 덕분에 발이 없어도 씨앗을 멀리 보내려는 제비꽃의 전략은 성공하는 것이다. 도심에서 제비꽃을 보게 되는 이면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이다.

제비꽃은 작지만 긴 꽃 모양을 하고 있다. 그 또한 생존전략이다. 꽃송이 뒷부분에 붙어있는 돌기가 오랑캐 머리 같다는 꿀주머니이다. 이 꿀주머니를 찾는 곤충 가운데 가루받이를 시켜주는 파트너를 고르기 위한 장치가 긴 꽃이다.  꿀벌이 찾아와 머리를 내밀면 암술부분이 벌어지고 그 틈사이로 꽃가루가 꿀벌 머리에 떨어지게 된다. 제비꽃을 알든 모르든 봄은 오고 가지만 허리를 낮추어야 보인다. 그러면 제비꽃은 자신을 아는 사람을 위해 봄마다 꽃을 피우고 간다.

 봄이 지나면서 화려한 꽃들이 피어나면 제비꽃에는 더 이상 꿀벌이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도 제비꽃은 씨앗을 만들기 위해 그냥 있지 않는다. 꽃을 피우지 않고 수술이 암술에 직접 닿게 하는 방법으로 가루받이를 한다. 꽃잎을 열지 않고 씨앗을 맺는 이런 꽃을 ‘폐쇄화’라고 한다.  꽃이나 꿀을 준비하지 않고 늦여름에서 가을까지도 씨앗을 만들 수 있는 나름의 자손 번식의 전략이다. 연약하고 힘없어 보이지만, 지혜롭고 강인한 꽃, 제비꽃을 만나면 자세를 좀 낮춰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서양인들에게는 제비꽃은 장미, 백합과 함께 가장 친숙한 꽃이다. 제비꽃의 속명인 Viola는 보라색을 의미하는 라틴어다. 여기에서 제비꽃을 일컫는 영어 바이올렛(Violet)이 나왔다. 바이올렛은 동시에 보라색을 말하는 독립된 색의 명칭기도 하다. 지금은 다양한 색깔이지만 처음에는 보랏빛 제비꽃으로 출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색깔처럼 많은 신화와 전설을 가진 꽃이기도 하다.

 최고의 신(神) 제우스와 미(美)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비롯한 여러 신들이 제비꽃과 관련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결혼식 때 제비꽃 다발을 주고받는 풍습도 여기서 비롯됐다. 제비꽃으로 장식된 아테네를 노래한 시인도 적지 않다. 옛날부터 아테네인 들은 제비꽃을 되살아나는 대지의 심벌이자 아테네의 상징으로 여겼다. 독일에서는 3월이면 강가에 처음 피는 제비꽃을 찾아가 인사하는 관습이 있다고 한다. 독일 시인 가운데 괴테와 하이네 등이 특히 제비꽃을 좋아해 그 모습을 의인화해 시를 지었다.

 오랜 역사와 이야기를 가진 제비꽃이지만, 주위에서 만나는 제비꽃은 여전히 잡초일 뿐이다. 잡초는 돌봐주는 사람 없이 살아가야 한다. 핍박을 받지 않으면 다행이다.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 잡초일수도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지구에 상처를 내지만 잡초는 쉼 없이 그것을 치료한다. 연약해 보이는 제비꽃도 오랜 세월 나름의 역할을 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이제 주변의 작은 생명에게도 따뜻한 눈길을 보낸다면 우리내 가슴도 따뜻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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