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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리게 얘기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기

  • 이향숙 스페셜 칼럼 webmaster@kukmini.com
  • 입력 2021.05.04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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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숙 국민투데이 논설위원
이향숙 국민투데이 논설위원

오래 전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 한 토막이다.

그 친구와 같은 서울 강남의 모 아파트에 사는 중년 여자가 택시를 탔다. 서울 서초동 남부순환 도로에 있는 예술의 전당이 목적지였다. 그런데 그녀는 운전기사에게 “전설의 고향으로 가주세요.”라고 말했다. 택시 기사는 그녀를 예술의 전당 앞에서 내려주었다. 예술의 전당 벽에는 큼직하게 <전설의 고향>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최근 실제 내가 겪은 이야기다.
셋이 만나서 잡담하다가 A가 말했다.
“그 정경심 말야. 초기엔 코로나 방역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좀 실망스런 부분이 있어.” 내가 그 말을 듣고 “너 잘못 아는 거 아냐? 정경심은 조국 마누라라고 방역은 정은경이지.”

 다른 친구 C가 말했다.
 “정경심 아니고 이 뭐라더라. 아, 이경심야.”
 “웬, 이경심? 남의 성을 바꾸니?” 그제야 셋은 깔깔 웃었다.

나이가 들면 흔히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 여럿이 대화를 해도 명사가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연예인 이름이나 유명인사 이름이 금방 생각 안 나고 헤어진 후 뒤늦게 생각나는 경우가 많다. 셋이 말하는 이름을 합쳐서 비빔밥을 만들어야 제대로 완성 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럼에도 택시 기사가 예술의 전당으로 알아듣고 데려다 준 일이나, 정경심을 방역 관련 정 청장으로 알아들은 일은 모두 경험에서 얻어낸 지혜다.  속된 말로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이런 경험을 수없이 하게 된다. 교육 수준과 상관없이 나이 들면 자연스레 찾아오는 건망증으로 잠시 엉뚱한 말을 하지만 듣는 사람은 제대로 알아듣곤 한다. 이렇게 작은 실언들은 차라리 애교다. 남을 모함하는 것도 아니고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다. 상대방의 인격을 깎거나 자존심을 건드리지도 않는다. 그냥 단순한, 악의 없는 실수라고 여기고 바로 잡아준다.

개떡같이 얘기한다고 원망도 안 하고, 험담하지도 않고 스스로 바르게 찰떡으로 알아듣는 건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윤활유가 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다. 그러나 반대로 찰떡같이 말해도 개떡으로 알아듣는다면 그건 인격 문제다. 좋은 말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막말하고 퍼뜨리는 것은 모함이고 언어폭력이다.

최근 몇 여당 국회의원들의 개념 없는 발언에 국민들이 분노했었다. 국회 청문회에서 여성 부의장이 야당 의원 발언에 마이크가 꺼진 줄 알고 “신났네, 신났어.”하고 비아냥, 조롱했다가 야당이 사과를 요구했고 그 여당 소속인 부의장이 사과를 안 하자 집단 퇴장한 일이 있다. 국회부의장은 중립을 지켜야 하고 설사 야당이 개떡 같은 발언을 해도 찰떡같이 일아 듣고 자중해야한다. 그 야당의 발언이 하찮은 발언도 절대 아니었는데 개떡 취급을 한 건 그 오만한 여성 의원이 인격을 스스로 깎은 것이다.

  또 여당 모 의원은 부동산 종부세와 관련해서 자기 SNS에 “김대중 노무현 정권 이후 10년을 건너뛰면서 저들(야당)은 많은 일들을 비틀어 왜곡시켰습니다. 부동산 문제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 어렵게 자리 잡아 갑니다. 더 이상 부동산 관련해서 씰데없는 얘기는 입 닥치시기 바랍니다.” 라고 적었다. 입 닥치라는 말은 비속어다. 국회의원이 할 말이 아니다. 스스로 체통을 깎는 오류를 범했다.

 그 의원은 또 “부동산을 팔아서 이익을 남기는 건 형사 범죄다. 집을 갖고 싶은 사람들의 행복을 빼앗는 도둑이다. 종부세가 아니라 형사법으로 다스려야한다.”고 폭탄 발언했다.  

  4. 7 보궐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이유 중 가장 큰 게 정부의 부동산 정책 때문이다. 부동산 정책으로 1주택자도 종부세 폭탄을 맞고 있는 것에 분노한 민심의 표출이었다. 야당이 부동산 정책을 왜곡했다고 주장하지만 야당이 아니라 온 국민이 말하는 찰떡같은 발언임을 알아야한다. 참패한 이유를 깨달아야한다.

  많은 국민들이 코로나 이후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다. 길 가다보면 몇 집 건너 점포가 폐업해서 임대한다고 써 붙였거나 오래 동안 했던 업종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많은 실업자들이 고가의 1주택을 가진 죄로 연 2회의 부동산세를 내고도 또 연말께 종부세를 낸다. 부동산 정책 여파로 매매가가 폭등하고 공시지가도 올라서 단순히 기분은 좋지만 수입 없는 은퇴자나 폐업한 소상공인은 종부세가 버겁다.

  어떤 은퇴자는 비싼 종부세에 “차라리 집 한 귀퉁이를 세금만큼 잘라 가면 좋겠다.”고 까지 말한다. 이렇게 참담한 현실인데 문재인 정부에서 자리 잡았다는 말은 넌센스다. 평생 힘들어 마련한 집 한 채 가진 은퇴자를 죄인으로 몰아가는 것이야말로 명예훼손이라는 죄다.

  국회의원을 선량(選良)이라 한다. 선택해서 뽑은 좋은 사람이란 뜻이다. 국민들이 나라를 위해 일하라고 선출했으면 자신을 뽑아준 국민들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설사 개떡같이 말해도 넓게 포용하고 찰떡같이 올바르게 이해하고 발언해야 한다.

  부동산으로 이익을 본 사람을 형사법으로 다스려야한다고 개떡 같은 말을 뱉는 국회의원을 선출해놓고도 하마시키라고 요구하지 않는 건 그 같은 발언을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국민들의 아량이다. 그 국민들의 너그러움에 먹칠하지 않아야한다. 국민들은 틀린 말도 옳은 말로 알아듣는데 그 의원들은 반대로 사실을 틀리게 아는 게 안타깝다.

  자기 편이 아니라고 야당을 조롱하거나 입 닥치시라는 천박하고 상스런 발언이나 하라고 선출한 게 아님을 자각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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