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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릉과 신여성 이야기

  • 최태호 스페셜 칼럼 webmaster@kukmini.com
  • 입력 2021.05.31 06:25
  • 수정 2021.05.3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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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 중부대 한국어 교수
최태호 중부대 한국어 교수

우리말은 발음하기도 어렵고 쓰기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1980년 대 초반에 태능중학교에 첫발령을 받았다. 벌써 40년 전의 일이다. 20대 초반의 혈기가 왕성한 교사로서 교무회의 시간에 학교명에 관한 토론을 주장했었다. 맞춤법에 맞지 않으니 ‘태릉중학교’로 교명을 변경해야 한다고 했다. ‘능’이라는 단어가 문장 앞에 나오면 두음 법칙에 의하여 ‘능현리(릉현리)’라고 할 수 있으나, 음절 중간에 들어가 있는 경우 두음 법칙의 적용을 받지 않으니 ‘선릉’, ‘동구릉’과 같이 ‘태릉중학교’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당시 교무회의에서는 ‘면목중학교’에서 ‘태능중학교’로 개명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한 고유명사이므로 그냥 ‘태능중학교’를 유지하자고 해서 필자의 주장은 통과되지 못했다. 그 후에 생긴 ‘태릉고등학교’는 ‘표준어규정’에 맞게 제대로 작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말에는 두음 법칙이라는 것이 있어서, 단어의 첫머리에 ‘녀, 뇨, 뉴, 니’가 오는 것을 꺼린다.(표준어규정 제5절 두음 법칙), 예를 들면 ‘녀자→여자’, ‘년세→연세’, ‘뉴대→유대’ 등으로 표기한다. 즉 ‘여, 요, 유, 이’로 표기한다는 말이다. ‘남녀’라는 단어를 보면 ‘녀’가 제2음절에 들어 있기 때문에 원음대로 쓰고 그렇게 읽는다.

문제는 다음과 같은 단어에서 시작된다. 즉 [붙임2]접두사처럼 쓰이는 한자가 붙어서 된 말이나 합성어에서, 뒷말의 첫소리가 ‘ㄴ’ 소리로 나더라도 두음 법칙에 따라 적는다. 예를 들면 ‘신녀성→신여성’, ‘공념불 →공염불’, ‘남존녀비 →남존여비’, ‘회계년도→회계연도’와 같은 것들이다. 단순하게 보면 ‘신여성’이라고 할 때 두 번째 음절에 있으니 당연히 ‘신녀성’이라고 써야 할 것이나 위의 [붙임2]의 규정에 의거하여 두음 법칙의 적용을 받는다. 외국인들에게 이런 것을 설명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붙임3]을 보면 “둘 이상의 단어로 이루어진 고유 명사를 붙여 쓰는 경우에도 [붙임2]에 준하여 적는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한국녀자대학교 →한국여자대학교’, ‘대한뇨소비료회사→대한요소비료회사’ 등과 같이 써야 한다.

끝으로 하나 더 있다. 개중에는 첫음절에 있으면서도 의존 명사에서 ‘냐, 녀’음을 인정하는 것이 있다. 사실 이러한 것들은 이미 우리의 입말에 적응이 되어 모두 알고 있는 것들이다. 다만 음절의 첫머리에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냐’로 읽는다는 질문을 받을 수가 있어서 첨언할 뿐이다. 예를 들면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한 냥 두 냥’이라고 할 때 ‘냥(兩)’이나 ‘냥중(兩-)’, ‘몇 년’이라고 할 때 ‘년(年)’이 그것이다. 이러한 단어들은 이미 한글화한 것이기도 하다. 과거에 우리들은 거지를 흉내 낼 때마다 “한 푼 줍쇼!”라고 하는 용어를 사용하곤 했다. 여기서 ‘한 푼은 분(分)’을 말한다. 한자가 우리말로 변한 것이다. ‘한 냥 두 냥’이라고 할 때의 ‘냥도 량(兩)’이 자연스럽게 ‘냥’으로 변하여 우리말로 굳은 것이다.

그렇다면 사륙신이 맞을까 사육신이 맞을까? 많은 사람들은 사륙신이라고 발음하고 그것이 맞다고 하지만 사실은 ‘사육신’이라고 쓰고 그대로 발음해야 한다. ‘六’은 본래의 발음이 ‘륙’이지만 그 앞에 ‘사(死)’라는 단어가 접두사적으로 붙었기 때문에 ‘육신’이라는 두음 법칙에 적용된 단어를 그대로 써야 한다. 위에서 설명한 ‘신여성’의 경우에 해당하는 단어라고 보면 답이 나온다.

오늘 독자들은 몹시 혼란스러울 것이다. 두음 법칙이 적용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는데, 단순하게 한 가지만 기억하면 쉽다. 접두사처럼 쓰이는 한자가 붙어서 된 말이나 합성어에서, 뒷말의 첫소리가 ‘ㄴ’ 소리로 나더라도 두음 법칙에 따라 적는다는 것이다.

오호 통재라! 북한에서는 문화어(남한의 표준어에 해당함)라 하여 두음 법칙을 예전에 없애버려서 우리와 단어가 자꾸 달라지고 있으니 어쩌리오? 녀자, 리발소, 로동신문 등으로 기록하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오호 애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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