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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銀行)과 돈

  • 최태호 스페셜 칼럼 webmaster@kukmini.com
  • 입력 2021.07.19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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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 중부대 한국어 교수
최태호 중부대 한국어 교수

돈은 항상 부족하게 되어 있나 보다. 월급으로 26만 원 받았던 초임 교사 시절에도 부족했고, 교단에 근 40 년을 근무해 온 지금도 쓰다 보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씀씀이가 커진 것도 사실이지만 살아오면서 항상 돈의 결핍을 느끼며 살아왔다. 매번 은행에서 융자 얻어 집을 사고 융자금 갚느라 정신없이 살아왔다. 그나마 우리 세대는 집이라도 장만했지만 지금 세대는 3포 세대라고 해서 다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것 같아 선배로서 미안하기도 하다.

은행(銀行)은 “1.금융 기관의 하나 2.어떤 때에 갑자기 필요해지거나 일반적으로 부족한 것 등을 모아서 등록하여 보관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도록 편의를 도모하는 기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지금은 은행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모두가 이용하는 시설이 아닐까 한다. 지금은 스마트 폰으로 은행 업무를 대신하지만 과거에는 적금을 들었다가 타는 재미도 있었고, 월급을 봉투로 받아서 돈을 세어 보는 재미도 있었다. 통장에 월급이 입금되면서부터 그런 재미는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월급날 교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납치해 가던 선배들이 그립다. 돈을 모아 두는 곳이면 금고(金庫)나 금행(金行)이라고 하든지, 돈행 혹은 전행(錢行)이라고 하지 왜 굳이 은행(銀行)이라고 했을까 궁금하다. 우선 그 연원을 살펴보기로 한다. 철기문화 이후 화폐의 주류를 이루었던 것이 바로 은(銀)이다. 그러므로 금보다는 은이 화폐의 근본으로 여기게 되었고 돈을 다루는 기관을 은행이라고 불렀다.(이재운 외 <알아두면 잘난 철 하기 딱 좋은 우리말 잡학사전>)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은 뒤에 행(行)이라는 글자를 덧붙였을까 의문이 간다. 원래는 ‘은항’이라고 발음해야 한다. 왜냐하면 ‘행(行)’이라는 글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첫째는 우리가 흔히 아는 ‘다닐 행’ 자이고, 다른 의미 중 하나는 ‘거리 항’이라는 것이 있다. 서열을 말할 때도 ‘항’이라고 발음한다. 우리가 가족의 서열을 말할 때 ‘항렬(行列)’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필자는 항렬이 낮아서 고향에 가면 온통 아저씨들뿐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은행은 원래의 발음이 ‘은항’이라고 해야 맞는다. 즉 은(銀돈)을 주로 다루는 가게(行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두 은행이라고 부르다 보니 그것이 표준발음으로 굳었다. 한자로 銀行이라고 쓰니 생각 없는 사람들이 무심코 은행이라고 읽으니 그것이 표준어로 되었다.

한편 돈이라는 단어는 어원을 찾기가 상당히 어렵다. 돌고 돌아서 ‘돈’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도(刀)에서 유래한 것으로 과거 칼처럼 생긴 명도전(明刀錢)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혹은 예쁜 돌(보석)을 화폐 대신 사용하던 시절에 ‘돋’에서 유래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어차피 금도 흙에서 나오는 것이니 ‘돌>돋>돈’의 변화를 거쳤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서정범, <새국어어원사전>) 과거에는 조개로 화폐를 대신한 적도 있다. 한자어 중에서 조개 패(貝) 자가 들어간 글자는 거의 돈과 관련이 있음이 이를 대변해 준다. 재화(財貨), 재물(財物), 화폐(貨幣) 등의 글자를 보면 모두 패(貝) 자가 들어 있음이 이를 대변한다.

돈으로 사용된 여러 가지의 예를 보면 패전(貝錢 : 조개 껍질 모양의 화폐), 구전(龜錢 :땅처럼 든든하고 거북처럼 장수하고 상서롭고 귀한 재물이란 뜻으로 귀전 혹은 구전이라고 불렀으며 엽전에 거북이 모양이 그려져 있다.), 어전(魚錢 : 고기 모양을 본떠서 만든 돈), 천포전(泉布錢), 도전(刀錢), 백전(帛錢), 맥전(陌錢), 공방전(孔方錢)(정시유, <돈의 어원> 참조) 등을 볼 때 다양한 것이 화폐를 대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모양을 본떠서 만든 이름도 있고, 쓰임새에 따라 붙인 이름도 있다. 공방전이라는 말은 둥근(圓) 모양으로 된 엽전의 가운데를 네모나게(方) 구멍을 뚫어 이르게 된 명칭이다.

화폐의 많은 이름들이 돈이라는 한 명칭으로 통일되어 부르게 된 것은 언중들의 힘이다. 다만 은행이라는 단어는 글자의 뜻으로 보아 ‘은항’이라고 읽는 것이 맞는데, 부르기 편하다고 해서 은행으로 된 것은 자못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돼지고기 볶음이 원래는 ‘저육(猪肉)볶음’인데, 언중들이 제육볶음이라 해서 표준어로 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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