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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도 ‘국가자살’의 길을 걷는 것은 아닌가

  • 장석영 스페셜 칼럼 webmaster@kukmini.com
  • 입력 2021.08.0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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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영 박사
장석영 박사

1975년 일본에서 발행되는 월간지 문예춘추(文藝春秋) 라는 잡지에 한편의 논문이 실린 일이 있다. ‘일본의 자살(自殺)’이란 의미심장한 제목의 이 논문은 일본 내 한 무리의 역사학자들이 공동으로 집필한 글이다. 이 글에서 필자들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의 모든 문명국의 멸망원인을 분석한 결과 그들 국가는 외적이 아닌 내부 요인들 때문에 스스로 붕괴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학자들은 이를 ‘국가자살’로 명명하고, 공통된 요인은 바로 ‘이기주의’와 ‘포퓰리즘(대중영합)‘이라는 것을 찾아냈다. 국민들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지배계급은 이러한 대중들에게 영합할 때 그 국가는 쇠망(衰亡)한다는 것이다. 당시 이 논문은 세인(世人)의 눈길을 끌지 못했지만, 수십 년이 지난 몇 해 전 일본 아사이신문이 인용하면서 유명해졌다.

 이 논문에서 예로 든 로마제국은 1,300여년이라는 오랜 역사동안 번영을 구가했지만, 쇠락(衰落)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은 결국 ‘빵과 서커스’ 때문이었다고 요약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나라, 로마는 당대 최고의 부국강병의 국가였으나 이기주의와 포퓰리즘의 만연되면서 시민들은 책임과 의무를 잊은 ‘도덕적 유민(遊民)’으로 변질됐다. 그들은 대지주(大地主)와 정치인에게 몰려가 ‘빵’을 요구했고, 정치인들은 환심을 사려고 공짜로 빵을 주었다.

 무료로 빵을 보장 받은 시민들은 일할 생각은 하지 않고 먹고 노는 데만 열중했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돌아 무료해 했다. 그러자 지배층은 시민들에게 ‘서커스’까지 무료 관람토록 해 주었다. 기원후 1세기 클라우디우스 황제 시대 콜로세움(원형경기장) 에서는 서커스나 격투기 같은 구경거리가 1년에 93회나 열렸다. 그것이 날로 늘어나 4세기 무렵엔 무려 175일간이나 열리는 상황이 됐다.

 대중이 자신들의 권리만 주장하고 지배층이 대중의 비위를 맞추려고 할 때, 그 사회는 ‘자살코스’로 접어든다. 로마 사회가 그랬다. 결국 로마는 활력 없는 ‘복지국가’와 태만한 ‘레저사회’로 변질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건축양식만 봐도 처음엔 그리스 양식을 따랐으나 점차 아치를 사용하는 등 화려한 양식으로 발전시켰는데, 이 양식은 대규모 목욕탕, 투기장, 개선문 등과 같은 거대하고 웅장한 공공건물을 짓는데 사용됐다. 말하자면 허례허식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다.

 그런 경향은 로마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인류 역사상 출현했던 모든 국가와 문명이 쇠퇴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자체적인 모순 때문이었다. 국가가 건전하고 안정된 중산 계층을 지니지 못한데서 비롯된 빈부(貧富) 격차의 문제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해결하지 않고, 오로지 복지정책과 같은 대중영합 정책을 통해서만 해결해 나가려고 할 때 생긴 모순이다.  

 한 국가가 모든 병폐의 근본적인 치유능력을 잃는다면, 그 국가는 그 순간부터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여기서 ‘빵’은 무상복지이고, ‘서커스’는 포퓰리즘‘을 상징한다. 무상복지와 포퓰리즘이 난무한다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국가자살‘로 치닫게 된다. 그래서 이 논문의 지적은 오늘날 우리에게 던져주는 매우 훌륭한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정부 들어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벌이고 있는 복지정책은 현금복지만 2,000종에 달한다. 정권 초만 해도 국가부채는 660조원이었으나 내년에는 1,100조원을 육박할 전망이다. 나라 빚은 한 해 이자만 20조원이 들어간다. 이자를 갚느라 빚을 더 내야 할 판이다. 물론 정부는 코로나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건 핑계에 불과하다.

 재난지원금을 일률적으로 지원하려 한다든가, 자국민도 접종이 어려운 백신을 북한에게 지원한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다. 대선을 앞두고 여당 대선후보들의 현금성 복지공약 경쟁은  한술 더 뜬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일찌감치 ‘기본소득’을 들고 나왔고, 이어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세계여행비 1,000만원을 제공하자고 했다.  

 

 이에 질세라 이낙연 전 총리는 군인들이 제대할 때 3,000만원을 지급하는 안을 제시했으며, 정세균 전 총리는 모든 신생아가 사회 초년생이 됐을 때 20년 적립형으로 1억원을 지원하자고 했다. 돈으로 청년들의 영혼을 사겠단다. 무슨 명목이든지 상관하지 않고 “돈을 줄 테니 표만 달라”는 식이다. 퍼주기를 해도 너무 하는 것이 아닌가.

 더욱이 이재명 지사는 기본소득 공약을 옹호하기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쳤다가 감옥에 간 소설 속 주인공 장발장을 들고 나왔다. 그는 “국민 1인당 월 8만원씩 나눠준다는 기본소득이 푼돈이라 실효성이 없다”는 반론에 부딪히자 “송파 세 모녀나 코로나 장발장에게는 생명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극도로 빈곤한 사람에겐 월 8만원이 아니라 그보다 적은 돈도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장발장을 돕기 위해 부자들에게도 똑 같이 월 8만원씩 지급해야 하느냐는 점이다.

 본래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빈곤선 이상의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생계비를 조건 없이 지급하는 제도다. 그것도 한 해에 그치지 않고 매년 실시하는 것이다. 당연히 한 해 52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재원이 필요하다. 또 국민의 근로의욕을 감퇴시키는 부작용도 높다. 학자들은 기본소득 같은 보편적 지급방식은 인도나 케냐처럼 복지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나라에서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다른 나라에선 성공사례를 찾기 힘들다.  

 우리나라도 복지 사각지대는 있다. 그래서 송파 세 모녀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말에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코로나 장발장’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한 끼 빵이 아니라 자력으로 매일 빵을 먹을 수 있게 하는 길을 찾아주는 일이다. ‘기본 용돈’이 아니라 일자리 창출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우선은 국민 전체에게 용돈을 줄게 아니라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 장발장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내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눈앞의 이익만 취하려는 이기주의 (利己主義)가 팽배해 있는데다 국가재정 파탄은 생각하지 않고 정치적 목적만을 달성하기 위해 포퓰리즘 정책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재보다도 미래를 보는 안목이다. 그런데도 미래를 위한 국가전략을 짜야할 정치인들이 인기에만 영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빵과 서커스’의 국가자살 징후는 온갖 분야에서 목격되고 있다.

 민주당이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이미 결정 난 김해공항의 확장사업을 백지화 시키고 특별법까지 만들어 10조원이 넘는 돈이 드는 가덕도 신(新)공항 건설을 밀어붙였다. 여기에는 부산지역 야당의원들도 찬성했다. 무상급식, 무상 보육에 이어 반값 등록금 지원도 하겠단다. 이 모두가 서민층의 몫을 더 줄이는 역설(逆說)을 가져왔는데도 정치인들은 계속 무상복지를 외친다.      

 집단이익이 국가이익보다 우선시 되고, 당장의 몫을 쟁취하려는 떼쓰기도 곳곳에서 난무하는 요즘이다. 정치지도자들은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당장 대선에서 정권을 잡기 위한 꼼수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더 큰 문제는 우리의 병폐가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누구하나 치유할 생각을 않는다는 점이다. 망조(亡兆)가 든 나라는 타살 당하기 전에 자살의 길을 걷는 법이다.40년 전 일본 학자들의 경고가 무섭게 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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