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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야 산다, 막장 드라마

  • 이향숙 스페셜 칼럼 webmaster@kukmini.com
  • 입력 2021.08.0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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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숙 국민투데이 논설위원
이향숙 국민투데이 논설위원

며칠 전 에어컨을 잠시 끄고 리모컨을 손에 든 채, 작은 방에 무언가 찾으러 들어갔다. 찾는 동안 리모컨을 책상 위의 책과 메모지 수첩이 쌓인 앞에 놓았다. 그리고 필요한 것을 집어서 밖으로 나왔다. 한 참 후 에어컨을 다시 켜려고 리모컨을 찾으니 손에 없었다. 한참 궁리하다가 아까 책상에 둔 게 생각나서 방으로 들어가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없다. 두 번이나 책상 위 물건들을 점검해도 리모컨이 없다.

마음이 초조하고 조급해졌다. 분명 작은 방에 두었는데 이게 무슨 일? 심각한 건망증? 벌써 치매? 이제부터는 찾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내 정신 상태가 불안해졌다. 그리고 안방부터 거실

주방까지 온 집안을 샅샅이 뒤졌다. 그렇게 땀을 흠뻑 흘리며 10여분 소동을 벌이다가 다시 작은 방에서 포기하고, 어딘가 있을 테니 나중에 와서 다시 천천히 찾아서 에어컨을 틀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렇게 포기하고 돌아서는데 얼핏 책상 위에 얌전히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리모컨을 발견했다. 그 순간 섬광이 스쳐갔다.

  “포기하니까 보인다.”

작은 소동이 큰 깨달음을 주었다. 왜 눈앞에 두고도 빨리 찾지 못했을까. 바로 내 마음이 빨리 찾으려는 조바심을 낸 탓이다. 찾기를 포기했을 때 비로소 마음이 열리고 평온해진 탓이다. 포기하면 보이고, 버려야 얻는다.

 옛날 고대 중국의 조주 큰스님에게 한 남자가 찾아와서 물었다.

  “어떻게 해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까?”

 스님이 답했다.

  “다 버려라.”

  “무엇을 버려야합니까?”

  “가진 것 모두 버려라.”

 요즘 아수라장으로 변한 대선 후보들의 설전장을 보면 왜 그렇게 버리지 못하는 아집들이 많은지 걱정스럽다. 아수라장이란 말은 불교에서 나온 사자성어다. 고대에 ‘아수라’라는 성질 나쁜 남자가 자기 애인을 다른 남자에게 뺏겼다. 그게 분하고 화가 나서 만나는 사람 모두한테  

애인 뺏은 놈을 욕하고 하소연하고 시끄럽게 떠들었다. 그의 말은 너무 시끄러워서 꼭 싸우는 걸로 들렸다. 아수라장은 아수라가 있는 곳이라는 말인데 소란스럽고 시끄러운 장소라는 뜻으로 쓰인다.

 내년 3월 대선은 사상 가장 많은 후보들이 나선 춘추전국시대를 만들고 있다. 매일 서로 물고 뜯고 가장 난잡하고 꼴보기 싫은 아수라장을 만들고 있다. 지역감정 들쑤시기, 스캔들 조작하기, 적자 서자 따져 계파 가르기, 인신공격, 과거 들쑤시기...  여기에 실종된 건 정책 공약이다.

한 후보는 자기가 꿩 잡는 매라며 특정 후보 헐뜯기로 일관하다가 겨우 내놓은 정책이란 게 김일성 종합대학과 서울대 학생을 서로 교환하자는 거였다. 말도 안 되는 위험한 발상이다. 서울대생을 매년 김일성 대학에 보내 저들의 주체사상을 배워오라는 것인가. 북한 골수 젊은이들이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간첩질하라는 것인가.

 스캔들을 조작하고 벽화까지 그려서 더러운 판을 만든 건물주와, 문 대통령에게 선물까지 받았던 진보좌파 가수가 만든 동영상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는데 이 모두가 배후에 큰 세력이 있다는 소문이 나서 민심이 흉흉하다, 한 시민 단체는 벽화 건물주를 고발했다. 이런 일들은 과거에 없던 추악한 짓이다.

 남의 얼굴에 페인트칠하고 칼로 쑤신다면 나중엔 자신이 똑같이 되받는 게 진리다. 내 얼굴에 똑같은 상처를 입게 된다. 결국 모든 후보가 상처로 얼룩진 만신창이로 선거를 맞게 되고 유권자는 제대로 선택하기 어려워진다. 라이벌 후보에 대해 헐뜯는 무서운 얼굴이 아닌 웃는 얼굴을 국민들은 원한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상대에 대한 공격이나 흠집 내기, 거짓말, 지역감정, 무조건 때리고 보자는 마음을 다 버리기 바란다. 대선 후보가 경선 과정을 거친 후 최종 확정되므로 아직 두어 달 남았는데 난장판 진흙탕 싸움이니 국민들은 벌써 식상하다. 이제부터라도 다 버리기 바란다. 그래야 최후에 진정한 승리의 월계관을 쓸 수 있다.

버려야 비로소 보이듯이, 버리고 다 내려놓을 때 원하던 것을 잡게 된다. 다른 후보가 A라는 정책을 내걸면, 나는 B라는 정책을 내걸어서 국민이 그 정책과 정당, 인성 등을 참작해서 투표하는 것이 옳다. 그게 아니고 상대 후보의 과거 발언이나 윤리 문제, 계파 문제를 들쑤신다면 그 누구도 영원히 후보 자격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모든 후보들은 마음을 비우기 바란다. 비울 때 비로소 국민들 마음이 보일 것이다. 국민의 희망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다 버리라던 조주 스님 말은 불교에서 방하착(放下着)이라 한다.

아래로 다 내려놓는다는 뜻이다. 마음의 모든 부정적 감정과 때를 벗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결코 쉽지 않다. 불교에서도 방하착은 영원한 숙제다.

 불교의 근본 경전인 금강경은 글자가 모두 5,183자이다. 이 중에 空이라는 글자는 한 개도 없다. 그러나 그 전체를 꿰뚫는 사상, 가르침은 空이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몽땅 비울 때 비로소 가득 채워진다고 한다. 空의 경지에 이르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노력이라도 할 때 그 후보는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다. 나는 그런 후보를 지지하고 그의 승리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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