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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 이야기

  • 최태호 스페셜 칼럼 webmaster@kukmini.com
  • 입력 2021.08.09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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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 중부대 한국어 교수
최태호 중부대 한국어 교수

나이가 예순 살이 넘으면 조심해야 할 것이 참 많다. 말이 많아서 꼰대 소리 듣기도 하고, 먹다가 흘리기도 하고, 입 주변에 음식이 묻어 있는 것도 모르고 먹어 추접스럽기도 하다. 그만큼 감각이 무뎌진 것이 아닌가 한다. 조심해야 할 것 중 대표적인 것이 냄새가 아닐까 한다. 입냄새는 말할 것도 없고, 노인 냄새가 주변인들을 괴롭게 하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양치질 먼저 하는 것도 지긋지긋한 입냄새 때문이고, 사람들 주변에 가까이 가는 것을 꺼리게 되는 것도 늙은이(?) 냄새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용도에 따라 쓰는 비누도 많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필자에게도 노인 냄새가 난다고 해서 여기저기 물어 봤더니 어느 목사님이 비누를 하나 소개해 줬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목욕할 때 사용하는 비누가 3 ~ 4 종류나 된다. 사실 어렸을 때는 겨비누(쌀을 찧을 때 나오는 고운 가루로 만든 빨래 비누)로 머리를 감았다. 빨래비누로 사용하던 것인데, 비싼 세수 비누로는 얼굴만 씻고, 머리는 쌀겨로 만든 빨래 비누로 감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발가락을 씻는 데는 무좀비누(피부과에서 1만원 주고 구입)을 쓰고, 사타구니와 겨드랑이, 귀밑을 닦을 때는 노인냄새 제거하는 비누(이 또한 엄청 비싸게 구입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다른 곳은 세수 비누로 쓰고, 머리 감을 때는 샴푸로 감는다. 예전엔 상상도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비누 덕분인지 몰라도 요즘은 냄새난다는 소리는 별로 듣지 않고 산다.

오랜 세월 비누는 우리와 함께 해 왔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았다. 필자의 어린 시절 기억에도 겨비누와 세수 비누밖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다. 이런 비누가 사실은 굉장이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서양에서는 BC. 2800년에 쓰인 점토판에도 등장한다. 점토판에 의하면 “솥에 동물의 기름과 재를 썩어서 끓인다.”고 되어 있다.(https://7july30.tistory.com/2에서 재인용함) 위의 글에 의하면 기원전 600년 경에 페니키아인들이 기름과 재를 끓인 다음 수분을 날리고 고체로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이것이 비누의 역사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쌀뜨물로 세수를 하면 피부에 좋다고 하였다. 실제로 쌀뜨물로 세수하는 모습을 많이 보며 자랐다. 이 쌀뜨물이 결국은 비누의 역할을 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쌀겨를 작은 주머니에 담아 문지르기도 하였고, 콩깍지 삶은 물에 세수를 하기도 하였다. 이런저런 모든 것들이 비누의 한 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비누의 역사를 살펴 보면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항범에 의하면 “비누는 16세기 ‘순천 김씨 묘출토간찰’에 ‘비노’라는 단어가 처음 보인다.”고 했다. 사전에도 비누의 옛말로 ‘비노’가 올라가 있다. 다른 말로는 조두(澡豆 :씻을 조, 콩 두 : 녹두나 팥 따위를 갈아서 만든 가루비누)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비누와 같이 고체로 만든 것은 1653년 하멜이 가지고 온 것이라고 한다.(손진호, <지금 우리말글>) 아마도 하멜이 가지고 온 비누가 우리가 쓰던 비노와 쓰임새가 비슷해서 그렇게 부르다가 후에 사전에 비누로 등재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882년 청나라와의 무역협정 이후 본격적으로 지금과 같은 형태의 비누를 사용ㅎ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적당하다.

한편 우리나라의 양반가에서는 곡물가루를 내어 세수를 했는데 이것을 비루(飛陋)라고 했다. 아마도 여기서 비누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라고 하는 설이 있다. ‘더러움을 날려 버린다’는 뜻으로 비루라고 했다. 그러나 한자로 ‘비로(飛露)’라고 쓴 것이 있는 것으로 보아 ‘가차문자’임을 알 수 있다. <가례도감>외 대부분의 책에는 ‘비루飛陋’라고 쓰여 있고, <한국한자어사전>에는 차차어로 비누를 의미하며, 비로(飛露)라고도 쓴다고 되어 있다.

종합해 보면 비누는 오래 전부터 사용한 우리말 조두(澡豆)를 말하는 것인데, 하멜 이후 비누라는 말로 바뀌면서 ‘더러운 것을 날려버린다’ 의미로 ‘비루(飛陋)’라고 하기도 하고, ‘비노’라고도 하였다가 비누로 정착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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