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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사태가 주는 교훈

  • 장석영 스페셜 칼럼 webmaster@kukmini.com
  • 입력 2021.08.18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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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영 박사
장석영 박사

TV화면을 통해 전해지는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관문인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은 글자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1975년 남베트남 패망 당시 미군이 사이공을 떠날 때 벌어진 ‘필사의 탈출’을 방불케 했다. 미국 공군(U.S. AIR FORCE)이라는 글자가 선명한 C-17 수송기가 이륙 중인 가운데 미처 타지 못한 사람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동체 외벽에 매달렸다.

 비행기를 못 탄 수백 명은 ‘혹시라도 비행기가 멈추고 사람을 더 태우지 않을까’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활주로를 달리는 비행기 앞쪽과 옆쪽에서 나란히 달렸다. 장면 장면을 보면서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그 처참한 현장은 오래된 기억이지만 우리 세대가 겪었던 6.25 동란이 떠올라 다시 한 번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탈레반이 점령한 수도 카불은 공포 그 자체였다고 외신은 전했다. 정부군과 친(親)정부 민병대는 보복을 우려해 군복을 벗어 던지고 달아났고, 탈레반에게 항복을 선언하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망명한 지도자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으로부터 버림받은 국민들은 희망을 잃은 듯 자포자기하는 모습이었다. 누구보다 여성들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집으로 돌아가려던 여성들은 버스나 택시가 승차를 거부해 거리에서 울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한 20대 여성은 탈레반이 금기시 해온 ‘교육 받은 여성’ 으로 낙인찍혀 탄압받을 것을 우려해 집에 돌아오자마자 가장 먼저 신분증과 대학졸업장을 불태웠다고 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이 장면들을 “절망과 슬픔과 공포의 현장”이라고 했다.

 국제사회는 바이든 행정부의 처사가 해외주둔 미군 철수를 강력히 주장하며 국제사회에 무관심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무엇이 다르냐며 비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얼마 전 아프간 철군을 정당화하는 연설에서 “ 우리는 아프간에 ‘국가건설(nation -build)'을 하러 가지 않았다”고 했다.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을 포함해 9.11 때 미국을 공격한 테러리스트들을 잡기 위해 아프간에 갔고, 그 목적을 성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프간 전(戰)을 시작한 것은 조지W.부시 전 대통령이었고, 그는 “평화는 아프간이 안정된 정부를 수립하도록 도울 때 성취될 것”이라고 하면서 “ 아프간을 탈레반이라는 악에서 자유롭고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을 돕겠다.”고 했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이 맞지 않은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미군이 철수해도 탈레반이 베트남 전쟁 때의 월맹군에 훨씬 못 미친다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평가는 큰 오산이었다.

 한 외국 언론인은 뉴욕타임스에 “미국의 무책임한 아프간 포기는 아시아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주장하며 역내 국가들에게 중국과의 경쟁에서 미국편을 들라고 설득할 때 일어났다”며  “아프간이란 강력한 예시는 중국을 아주 편하게 해줄 것”이라고 썼다. 워싱턴 포스트도 “ 아프간의 붕괴는 동맹들이 다른 전선에서도 미국의 결의를 의심하게 만들었다”며 영국하원군사위원장의 말을 소개했다.

  그는 “휴대용 로켓포, 지뢰, AK-17소총으로 무장한 탈레반도 물리치지 못하면서 어떻게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의 후시진(胡錫進) 총 편집인은 “대만 독립분자들은 똑똑히 보아라”라며 “어제는 사이공, 오늘은 카불, 내일은 타이베이(가 버려질 것)”이라며 조롱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미 군사전문가들은 “북한이 아프간의 교훈을 적용하려 시도하며 한국 내 분열을 획책하고 한. 미 동맹을 약화시켜 주한미군의 주둔 근거를 없애기 위한 노력을 배가할 것“이라고 했다.    

 미군은 전쟁 중에 갑작스럽게 물러난 베트남에서와는 달리 아프가니스탄에서는 10년 전인 2011년부터 철수를 시작했다. 이번의 미군 완전 철수는 이슬람 정부에 안보 권한을 넘긴 2014년 이후에도 미군 1만 명 정도가 남아 아프간 군경 훈련 등의 일을 맡아 왔는데 그마저도 그만 둔다는 의미였다. 이처럼 미군 철수에 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도 있었고, 아프간 정부군은 미군으로부터 지원받은 최신 장비로 무장도 했었다. 그런데 왜 그리 쉽게 무너졌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패망할 당시의 남베트남의 실정과 판박이였다. 1964년에서 1968년까지 주월 미군사령관으로 월남전을 주도한 윌리엄.C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은 그의 저서 “왜 월남은 패망했는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월남전의 패인은 미국 조야(朝野)의 문제와 미국 언론의 일방적인 보도 등도 원인“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직접적인 원인은 ”적을 앞에 놓고 부패한 월남 군부지도자의 권력 다툼과 종교지도자의 학생 선동으로 인한 끊임없는 데모로 국력총화가 결여된 데 있다“고 했다.

 아프간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을 비롯한 아프간 지도층은 분열을 거듭하면서 부패에 빠져 나라를 다시 세울 준비를 하지 못했다. 서류상으로 병력은 30만 명에까지 이르렀으나 봉급을 타기 위해 거짓으로 등록한 유령 병사가 많아 실제 병력은 6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지난해 2월 미군과 탈레반의 철수 합의 이후 탈레반에게서 돈을 받고 무기를 판 군인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미군이 떠나기 시작하자 군의 사기는 곤두박질쳤다는 것이다.  

  아프간 사태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시사점을 준다. 우선  한미동맹에 대한 문제다. 아프간 철군은  미국이 대(對)한국 방위공약의 신뢰성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한반도의 현상이 바뀌면 미국의 여론도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미국이 한국의 ‘평화정권’에 동의해 미군을 철수하려 한다면 ‘가짜평화’라도 미국 내에선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프간이 보여준 현실은 미국이 국익에 도움이 안 되면 언제든 떠난다는 것이다. 얼마든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과거 사이공의 티우 정권이 몰락한 뒤 영국의 저명한 게릴라 전문가이며 월남전을 직접 지켜본 로버트 톰슨 경은 “미국에 너무 기대지 말라”고 아시아 국가들에게 베트남의 교훈을 압축해서 경고한바 있다. 미국은 아프간에서 미군이 철수하면 몰락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다. 그러면서도 미군은 철수 했다. 미국의 국익 면에서 더 이상 아프간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도 미국은 그곳에 남아있을 국익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철수한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미국이 타국의 자유와 인권만을 위해 한정 없이 군대를 주둔시킬 여력도, 의지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국가안보는 남이 지켜주는 게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책임지고 지켜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지키려고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나라를 국제사회가 돕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베트남과 아프간에서의 뼈저린 교훈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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