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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한국

  • 유자효 스페셜 칼럼 webmaster@kukmini.com
  • 입력 2021.08.25 05:38
  • 수정 2021.08.25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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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효 논설위원
유자효 논설위원

8월 21일-22일자 중앙선데이 29면 ‘사진과 함께 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90>을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마치 요즘 읽고 있는 기사와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일부를 그대로 인용합니다.

 “장제스의 국민정부는 통치수단이 야비하고 잔인했다. 민심을 잃었다. 군심(軍心)은 더 일찍 상실했다. 사기가 엉망이다 보니 미국이 지원한 신무기도 쓸모가 없었다. 트루먼 당시 미대통령의 구술에 이런 내용이 있다. ‘대륙에서 국민정부의 몰락은 부패와 무능 때문이었다. 동북에서 베이징을 거쳐 난징까지 모든 전선에서, 장제스의 500만 대군은 공산군 30만에게 패했다. 부패와 무능을 타고난 사람들을 위해 단 한 명의 미군도 희생시킬 수 없다.’”

 73년 전 중국의 상황이 오늘의 아프가니스탄과 너무도 흡사하지 않습니까? 저의 기억은 46년 전으로 빠르게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1974년 12월, 저는 KBS에 견습기자로 입사했습니다. 저는 외신부로 배치되었고, 아시아 담당을 배정받았습니다. 월남과 월맹은 1973년 1월, 프랑스 파리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해 그해 3월 말까지 미군이 전부 철수하였습니다. 협상 주역인 헨리 키신저 미국무장관과 레득토 월맹 남부 중앙국 부서기는 그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지명되었지요. 지금 돌이켜보면 코미디지요. 키신저는 받았고, 레득토은 사양했습니다.

 그런데 1975년이 되자 월맹의 대공세가 시작됐습니다. 상황은 시시각각으로 악화돼 월맹군의 월남 점령 지역이 매일매일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외신부는 초비상 사태로 돌입했지요. 매일 월남 전황을 보도했던 저는 오늘은 후에 실함, 다음날은 다낭 실함을 보도하며 매일 변하는 전선을 지도로 그려 설명한 기억이 새롭습니다. 나중에는 사이공 주재 미 대사관이 철수하기도 전에 월맹군이 들이닥쳐 대사관 옥상에서 헬기로 탈출하던 것은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장면 그대롭니다.

 당시의 월남군도 부패했었고, 월남 정부 내에 월맹의 간첩들이 준동하고 있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월남 정계의 유력 인사들 가운데도 월맹의 간첩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1968년 기준 183만 명 대 46만 명의 압도적 병력과 미군이 지원한 최첨단 화력에도 불구하고 재래식 소총에 수류탄을 든 베트콩들에게 지고 만 것입니다. 역시 요즘 아프간을 보는 것 같지 않으십니까? 매일 극렬하게 반정부 시위를 벌이던 사람들은 월남 패망 후 자취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어디로 가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바다로 탈출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남중국해의 고혼이 되고 말았습니다.

 

 몇 년 전, 세계 작가들의 친목 단체인 국제 펜(PEN) 총회에서 저는 망명 베트남 펜 센터의 작가를 만났습니다. 그는 월남 패망 이후 보트피플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유럽에 와 작품 활동을 하면서 베트남 작가들 표현의 자유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습니다. 망명 베트남 작가들만으로 하나의 펜 센터를 구성할만큼 작가들 수도 많고, 활동도 활발하였습니다.

 요즘 우리가 보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사태는 불과 11일 만에 수도 카불이 떨어졌습니다. 미군이 없는 전선을 탈레반은 걸어서 오는 속도로 뚫고 카불 시내로 진입했다고 합니다. 20년의 세월이 지났다지만 그들의 잔혹상은 이미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역 경찰청장의 눈을 가리고 꿇어 앉혀 기관총 세례를 퍼붓는 장면은 탈레반 치하의 아프가니스탄을 다룬 영화 ‘칸다하르’나 ‘칸다하르 브레이크’의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영화에는 차에 태우고 가던 남성을 끌어내려 길바닥에 꿇어 앉히고 뒤통수에 총을 쏴서 죽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한국 선교사 두 명도 그런 식으로 학살당했습니다. 많은 기자들도 순직했지요. 영화 ‘맨 온 파이어’에 “총알은 정직하다”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무지막지하게 죽여버리는 공포의 세상입니다. 또한 지뢰를 제거해주기 위해 온 영국인의 여성 통역을 이교도와 간통했다고 군중들이 끌고 가 돌로 쳐 죽이는 장면도 나옵니다. 광신적 원리주의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지뢰에 다리를 잃은 사람들의 무리가 국제적십자 구호소로 몰려와 목발을 요구하는 장면은 전쟁의 참상을 보여줍니다.

 73년 전의 중국과 45년 전의 베트남 그리고 오늘의 아프가니스탄은 한국인들에게 빠른 속도로 소환됩니다. 그리고 자신을 지켜주는 것은 결국 자신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한국군의 주적 개념이 사라지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한·미 합동 훈련을 하고 있는 군대에서 여군에 대한 성추행이 빈발하고 있음을 심각하게 우려합니다. 이제 육,해,공 3군에서 모두 극단적 선택을 한 여군이 나타났습니다. 과연 피해 여군의 죽음으로 드러난 사실 뿐일까요? 지금 이 시간에 고통받고 있는 여군은 없는 것일까요? 도대체 무슨 군대가 이러합니까?

 만일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노인들마저 없이, 한반도기를 들고 주한미군 철수만 외치는 데모꾼들이 미 대사관을 에워쌌다면 미국인들이 한국을 어떻게 보았을까요? 국정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반대 세력이 당장에는 불편한 듯이 보여도 그것이 오히려 국익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대국적인 차원에서 사안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지지 세력만 챙겨서는 안됩니다. 스스로를 지키겠다는 의지와 결기 그리고 사기가 없으면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 우리를 지켜줄 우방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되새기는 요즈음입니다.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멍하니 있다가 큰일 날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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